“이 사건과 이재명 대통령이 무슨 상관이 있나.”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10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를 두고 이같이 반문했다. 이 대통령의 관련 재판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려는 차원의 항소 포기가 아니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번 항소 포기 사태가 취임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은 정 장관의 이른바 이 대통령 ‘방탄’ 행보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1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항소 포기와 맞물려 정 장관이 지난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과 검찰의 기계적 상소(항소·상고)에 대해 주고받은 문답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정 장관에게 “검찰이 되도 않는 거 기소해가지고 무죄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한다”며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정 장관은 “가장 근본적인 건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서 명백한 법리 관계를 다투는 것 외에는 항소를 못하게 하는 식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당시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1심 유죄(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 이어 2심 무죄를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다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일을 염두에 둔 문답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낳았다.
정 장관이 최근 형제복지원·삼청교육대·여순 사건 등 과거사 사건에 대한 상소 포기나 재심 청구 등을 적극 지휘해 온 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 장관은 여순 사건 특별법에 따른 재심 청구 이후 페이스북에서 “이재명정부의 검찰개혁은 검찰을 국민 위에 군림하던 권력집단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국가기관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상고 포기 이후에는 “검찰이 국민을 억압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와 관행을 개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당연히 평가받을 일”이라면서도 “일련의 상소 포기가 결국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위한 ‘빌드업’ 아니었느냐는 시선도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난 9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제기했던 검찰 술자리 회유 의혹 감찰을 지시한 것을 두고도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된 ‘이 대통령 재판 뒤집기’라는 뒷말이 나온다. 이 전 부지사는 이 사건으로 징역 7년8개월이 확정됐고, 공범으로 기소된 이 대통령은 1심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국민의힘은 재심 청구 근거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번 논란으로 정 장관에 대한 검찰 내부의 신뢰도도 낮아지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그간 검찰 수뇌부는 정 장관을 합리적 개혁론자로 믿고 잠잠히 기다렸는데, 나아진 게 없다는 반응이 많다”고 밝혔다. 다른 검사는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이번 항소 포기를 계기로 실망감이 커지는 기류”라고 전했다.
구자창 박장군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