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잇달아 발생한 집단 부정행위는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비대면 강의와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성화로 이미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들은 비대면 시험의 허점을 악용했고, 대학 측은 안이한 관리·감독으로 커닝을 유도했다. 대학생의 윤리 의식과 학칙이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국민일보가 11일 인터뷰한 서울 지역 대학생 10여명의 말을 종합하면 비대면 시험에서 챗GPT 등 AI를 사용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연세대 2학년 A씨(20)는 “온라인 시험에서는 챗GPT를 쓰지 않는 사람이 손해라는 분위기”라며 “논란이 터지기 전부터 있던 일이고 이번에 걸린 학생들은 운이 나빴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박모(26)씨는 “온라인에선 솔직히 작정하기만 하면 커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연세대에서 발생한 온라인 커닝은 촬영 각도를 조정해 사각지대를 만들거나 컴퓨터 화면에 여러 프로그램을 겹쳐 띄우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정행위에 대한 예방책은 미흡했다. 한양대 재학생 B씨(25)는 “비대면 시험에서 컴퓨터 화면이나 손을 찍으라는 규칙이 없었다”며 “대신 교수님이 시험 문제를 많이 내 시간이 없어 AI를 사용하지 못하는 조건을 만든다”고 말했다. 고려대 1학년 정모(19)씨는 “아무리 학교에서 예방 조치를 마련해도 학생들은 이를 뛰어넘더라”고 했다.
문제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부정행위자 아니면 피해자로 나뉘었다. 고려대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한 교양과목을 들었던 고모(19)씨는 “이번 학기에 처음 개설된 수업이어서 중간고사 공부에 시간을 많이 들였는데, 노력이 물거품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2학년 박모(20)씨는 “다른 사람의 커닝으로 인한 불이익을 피하려고 일부러 대면 시험을 치는 과목을 골라 듣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급증한 온라인 강의는 최근 대규모 교양과목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학정보 알리미에 따르면 연세대의 원격 강좌 수강자 수는 2022년 1학기 8만6000명까지 늘었다가 이후 3만~4만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고려대는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1만~2만명대를 보이고 있다. 대학생 최모(20)씨는 “취업 준비와 대학생활을 병행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비대면 수업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수업의 구조적 허점과 AI 윤리 의식 부재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세계 주요 대학은 온라인 강의도 수강생을 20명 내외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 대학은 비용 절감을 위해 수백명을 한 강좌에 몰아넣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AI가 보편화했지만 대학 내에서 AI 활용 가이드라인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교수 재량의 시험 방식을 대학이 일일이 개입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한 대학 관계자는 “강의 진행 방식과 평가는 전적으로 교수님이 정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마련하는 규정과 지침을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찬희 차민주 유경진 김이현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