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는 걸 좋아한다. 친구가 생각나면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도 걸지만 편지를 쓰는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다. 문장을 이어가며 오롯이 그 사람만 생각하고 싶다. 책상 왼쪽 서랍을 열어서 엽서를 꺼내 몇 자 적는다. 어제 불현듯 떠오른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안부를 묻는다.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쁘다. 기분 좋게 글을 쓰고 싶어서 작년엔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을 빌려 책을 냈다.
오늘 아침에 김민기가 부른 ‘가을 편지’를 들었다. “가을에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이 노래의 화자는 요즘 말로 ‘에겐남’인가 보다. 그는 가을을 타고 있다. 넘치는 감성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는 외로운 여자, 헤매인 여자, 심지어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단다. 내 생각엔 씩씩한 여자가 아름답다. 감히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은 방식으로 친구의 안부를 묻는 용감한 여자가 되련다.
성서에도 편지가 많다. 신약성서 27권 중 20권이 편지다. 아니,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편지라고도 한다. 측정 불가능한 규모의 사랑이 담겨서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랑만 받고 싶어서일까.
정혜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