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평생 취미도 없이 맞벌이로 일만 한 엄마가 어느 날 수줍게 부탁했다. “임영웅 콘서트에 한번 가볼 수 있을까?” 하루하루 살기 바빠 연예인엔 관심조차 없던 엄마가 ‘임영웅 팬’이 된 지 벌써 수년째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저 좋고, 마음에 위안이 된다고 했다. 딸로서 별다른 도리가 있나. 호기롭게 예매에 나섰다.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학창 시절부터 콘서트와 뮤지컬, 연극을 섭렵한 나름의 예매 실력을 믿었다. ‘3, 2, 1, 땡!’ 티켓 오픈 시간을 기다려 정각에 예매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화면에 뜬 대기 번호는 무려 30만대였다. 피 튀기게 치열한 ‘피켓팅’ 전쟁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하며 깨달았다. 이미 일반 방식으로 예매하기 어려운 판이 돼 버렸다.
예매 시장이 암표상의 놀이터로 변모하면서 일반 티켓 구매자의 기회는 박탈되고 있다. 예매 시스템 접속 자체가 어려워진 데는 암표꾼들이 쓰는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 영향이 크다. 암표 때문에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암표 시장을 찾으면 수요가 늘어 거래가 활발해진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린 것이다.
대표적 티켓 거래 사이트 ‘티켓베이’에 들어가 보니 천태만상이 펼쳐졌다. 몇만원 웃돈은 기본으로 붙었다. 정가 15만~20만원의 공연 티켓이 수십만, 수백만원에 팔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달 말 열리는 임영웅 서울 콘서트의 정가 17만6000원짜리 티켓은 최고 130만원에 올라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난 6~8월 ‘국내 암표 거래내역 모니터링’ 결과 그룹 NCT WISH의 데뷔 첫 단독 콘서트 19만8000원짜리 티켓은 97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인기 스포츠 경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KBO리그 경기 입장권 수천~수만 장을 대량 예매한 뒤 온라인 티켓 판매사이트에서 정가보다 몇 배나 높은 금액에 되판 자들이 경찰에 붙잡힌 사례가 심심찮게 전해진다. 최근 한국시리즈 기간에도 암표가 기승을 부렸다. 1차전 암표 가격대가 49만~55만원에 형성됐고 최고 100만원까지 올랐다. 6차전 티켓은 무려 999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암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가 사실상 손 놓고 방관한 사이 불법 시스템은 조직화·산업화했다. 일선에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가령 가수가 콘서트를 열 때 주최사인 소속사는 ‘불법 거래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예매처와 협력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팬들의 제보를 받아 적발한 부정 예매 건을 강제 취소하는 식이다. 이런 절박한 노력에도 암표를 근원적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강력 대응에 나설 때다. 실정에 맞지 않는 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현행 공연법상 매크로 프로그램을 상습적·영업적으로 이용해 입장권을 부정 판매하는 경우만 처벌 대상이 된다. 정상적으로 예매한 티켓에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행위를 단속할 길이 없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티켓을 산 뒤 웃돈을 받고 판매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며 “법안이 마련되면 철저히 단속하고 전력을 다해 없애겠다”고 말했다.
사회 여론이 모이고 관련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황인 만큼 이번엔 기필코 암표를 근절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개정안은 입장권 부정 판매로 적발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강화했다. 암표는 자유시장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암적 행태다. 여기에 구매자로서 동참하지 않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문화를 향유할 권리와 기회는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
권남영 문화체육부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