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작성 ‘가짜 사업계획서’로 억대 정부지원금 타내는 청년들

입력 2025-11-10 19:08 수정 2025-11-10 19:09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연합뉴스

방향제 브랜드를 창업한 20대 A씨는 3년 전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사설서비스를 활용해 정부지원금 1억원을 타냈다. 지원금 선정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건 국내에서 버려지는 과일을 이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는 A씨의 실제 계획과는 무관한 거짓이었다. A씨는 10일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준 전문가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거짓 목표를 세워야 한다”며 “사회문제 해결 방안이 포함될수록 선정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공략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정부지원금을 받은 뒤 해당 전문가에게 성공보수로 수백만원을 지급했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20대 B씨도 사업계획서 대리업체를 통해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B씨는 “처음에는 스스로 계획서를 작성했는데 2년 동안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못했다”며 “주변에 선정된 청년 창업가들에게 물어보니 대리자에게 계획서를 맡겼다고 해서 똑같이 전문가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B씨는 그 해에 바로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청년 창업가들이 전문업체에 의뢰해 대리 사업계획서를 작성한 뒤 억대의 정부지원금을 타내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실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정부 정책자금 신청 사업계획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플랫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취재진이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사업계획서를 요청하자 “작업료를 받고 진행하고 있다. 작성된 것이 아예 없더라도 처음부터 계획서 대행 작성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사업계획서 대리작성으로 95회 이상 고용된 또 다른 전문가는 “사업계획서 작성 시 30만~70만원의 견적이 책정된다”며 “중소기업 사업부 출신으로 사업계획서 다수를 작성한 경험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 관련 모집공고에는 사업계획서 등을 타인이 대신 작성해 제출하는 경우 관련자 전원이 사기 또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중기부 관계자는 “사실 대리 작성 여부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지원금이 환수된 적은 없다”며 “방지책으로 올해부터 지원금 지급을 2단계로 나눠서 1단계에 일부를 지급하고 창업가가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평가한 뒤 2단계 때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기부에서는 대리 작성자에 대해 별도 관리를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전문가가 사업계획서 대리 작성을 홍보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이를 잡아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기부는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중기부 평가위원’이라는 신분을 강조하며 대리 작성 서비스를 홍보하는 경우에만 제재를 요청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원금을 지급하기 전 사업가 심층면접 등을 통해 심사를 꼼꼼히 할 필요가 있다”며 “정직하게 사업하려는 창업자에게 지원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대리 작성자를 제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