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의식주’가 우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우주비행사들은 단조로운 진공 포장 식품 대신 오븐에 갓 구운 치킨을 먹는다. 명품 브랜드가 디자인한 우주복을 입고 달 표면을 거닐 준비도 하고 있다. 지구에서 입고 먹고 자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우주로 확장하려는 우주 선진국들의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우주는 더 이상 생존이 아닌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려는 중이다.
중국은 최근 세계 최초로 우주선에서 ‘우주 오븐’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CCTV는 지난 4일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열풍 오븐을 이용해 닭 날개와 스테이크 고기 등을 조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발사된 유인 우주선 ‘선저우 21호’에 탑재된 오븐을 이용한 것이다.
CCTV가 공개한 영상에서 우주비행사들은 닭 날개 6조각을 그릴 망으로 덮어 고정한 뒤 오븐에 넣었다. 180도에서 28분간 구워진 닭 날개는 먹음직스러운 갈색빛을 띠었다. 두꺼운 스테이크 고기도 동일한 방식으로 구워졌다. 그간 우주비행사들은 조리·건조 후 진공 포장한 음식을 데워 먹는 식사를 해왔다. 장기 보관·운반 등을 용이하게 하고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 음식이 떠다니다 기계 장치 등을 망가트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번 우주 오븐 개발로 우주비행사들의 다채로운 식사가 가능해졌다.
쉬안융 중국우주인연구훈련센터 연구원은 “고온 촉매와 다층 여과 기술을 적용해 연기 없는 조리를 구현했다”며 “우주 환경에서도 화재 위험 없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면 온도를 낮게 유지한다”고 말했다. 기름 없이 식재료를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에어프라이어와 유사한 원리인 것이다. 최대 가열 온도는 190도이며 최대 500회까지 안정적으로 연속 작동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븐 내부에는 잔여물 수집 장치와 가열 망, 그릴 망이 설치돼 무중력 상태에도 음식이 떠다니지 않도록 설계됐다.
톈궁에는 ‘우주 채소밭’도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지금까지 상추 방울토마토 고구마 등 7종 식물 재배에 성공해 우주비행사들이 4.5㎏의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미 10년 전인 2015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상추 재배 실험에 성공했으며 이후 고추 무 토마토 완두콩 허브류 등으로 가짓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미세 중력에서의 식물 유전자 발현과 호르몬 변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우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식물 품종도 개발 중이다.
우주에서 명품 옷을 입는 시대도 다가오고 있다. 미국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와 명품 브랜드 프라다는 밀라노에서 NASA의 아르테미스 3호 임무에 사용될 차세대 달 우주복을 선보였다. 아르테미스 3호는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반세기 만에 추진하는 유인 달 착륙선으로 2027년 발사될 예정이다. 전체적으로 흰색인 우주복에는 프라다를 상징하는 빨간색 줄무늬와 회색 패치가 곳곳에 배치됐다.
성능 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특수 제작된 부츠를 통해 하루 8시간 우주 유영이 가능하며 열을 반사하는 기능이 있는 흰색 소재로 제작돼 극한의 온도와 달 먼지로부터 우주인을 보호한다. 팔·다리 관절 움직임도 유연해져 자연스러운 동작이 가능해졌다. 러셀 랄스톤 액시엄 스페이스 우주복 프로그램 매니저는 “기술과 과학, 예술을 결합해 미래에 달 위를 걸을 사람들을 위한 궁극의 의상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우주 관광 산업의 발전으로 다양한 민간용 우주복도 등장하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운영하는 미국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은 지난 4월 여성 6명으로 구성된 민간 우주비행팀을 꾸려 약 10분간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는 우주 여행을 마친 뒤 귀환했다. 이들이 입은 짙은 파란색의 우주복은 패션 브랜드 ‘몬세’의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이다. 탄성이 좋은 네오프렌 소재를 사용했으며 종아리에 지퍼를 달아 플레어 팬츠처럼 연출할 수 있게 해 마치 일상복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인류는 우주에 머물기 위한 거주지 마련에도 나섰다. 미국 우주개발회사 오비탈 어셈블리는 숙박 시설을 갖춘 우주정거장 ‘보이저 스테이션’을 202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텔 내부 디자인은 글로벌 호텔 체인 힐튼이 맡는다. 동시 수용 가능 인원은 28명이며 거주 면적은 약 1만1600㎥다. 호텔은 무중력 체험을 제공하며 지구 대기권을 시속 2만7000㎞의 속도로 공전한다. 객실마다 중력 수준 조절도 가능할 전망이다. 오비탈 어셈블리는 호텔이 상업적인 용도뿐 아니라 특수한 환경이 필요한 제조업체와 연구팀 등을 위한 우주 연구 센터로도 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NASA 역시 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의 건설을 본격화했다. NASA는 최근 게이트웨이의 핵심 요소인 거주·물류 모듈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게이트웨이 본체와의 통합 작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게이트웨이는 인류의 달 장기 체류와 화성 탐사 등 심우주 임무의 베이스캠프로 활용될 전망이다. NASA는 2028년까지 게이트웨이에 우주비행사를 보내는 아르테미스 4호 임무를 수행한다는 목표다.
우주 의식주 혁명이 현실화하며 본격적인 우주경제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우주복 시장은 지난해 30억 달러에서 2033년 65억 달러로, 우주 식품 시장은 32억 달러에서 53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우주 관광 시장은 지난해 12억3000만 달러에서 2032년 183억4000만 달러(약 26조6000억원)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양윤선 기자 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