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의 항소를 포기하며 1심이 무죄를 선고한 혐의들에 대해 다시 유무죄를 다퉈볼 기회는 사라졌다. 여기에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배임죄 폐지마저 현실화하면 1심에서 인정된 형량마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여당은 배임 유형별로 별도 처벌 근거를 마련한 대체 입법을 통해 상급심에서의 면소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10일 대장동 민간업자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조형우)가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가장 큰 근거는 업무상 배임 혐의였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배임 가담 정도와 참작 여부를 가장 중요한 양형 요인으로 참고했다. 징역 5년이 선고된 정영학 회계사의 경우 업무상 배임죄만 유죄로 인정됐지만 배임 혐의에 더해 뇌물(약 37억원) 제공까지 유죄가 인정된 남욱 변호사(징역 4년)보다 더 높은 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정 회계사가 “배임 범행 과정에서 민간 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재판에서 증언한 내용까지 바꿔가면서 배임 범행을 부인했다”며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만약 대체 입법 없이 배임죄 폐지가 이뤄질 경우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이 이뤄진다. 이 경우 정 회계사는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장동 사업으로 6000억원 이상의 이득을 챙긴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의 형량 역시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는데, 배임을 제외한 특경법상 횡령·업무상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권고 양형을 징역 1년3개월~5년으로 계산했다. 김씨의 배임 행위를 전제로 선고한 428억원의 추징금 역시 추징이 어렵게 된다. 1심 재판부는 배임으로 인한 민간업자들의 ‘부패 재산’을 1128억원으로 계산했다.
민주당은 대체 입법이 이뤄진 뒤 검찰이 공소장 변경 등을 통해 적용 죄목을 바꾸면 면소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죄 조항 하나로 처벌해오던 범죄들을 수많은 법안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윤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