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작은 원전’인 소형 모듈 원자로(SMR)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주택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인공지능(AI)·탄소중립·에너지안보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SMR을 미래 먹거리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SMR 상용화 사례가 없고, 경제성·안전성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은 과제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건설부문,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SMR 관련 국내외 사업 기반 확대에 나서고 있다. SMR은 스몰 모듈러 리액터(small modular reactor), 말 그대로 ‘소형 원전’이다. SMR의 최대 전기출력은 300메가와트(㎿)로 기존 대형 원전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레고 블록처럼 공장에서 미리 만든 부품(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다.
원전 및 건설업계에서 강조하는 SMR의 장점은 안전성이다. 원전은 핵분열로 생긴 열로 물을 끓이고, 여기서 발생하는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대형 원전은 이를 위한 원자로·증기발생기·가압기·냉각재 펌프 등 주요 기기들이 따로 있고, 굵은 배관으로 연결한다. 문제는 이 배관이 파손되면 방사성 물질이 누출돼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SMR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요 기기를 하나의 압력 용기에 일체화해 발전용량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인다. 대형원전보다 출력량이 적기 때문에 사고 시 발생하는 붕괴열도 적어 대응이 더 쉽다는 점도 안전성 근거로 꼽힌다.
소형화·모듈화를 통한 경제성도 기대된다. 공장에서 만든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기 때문에 시공 기간·비용을 줄일 수 있다. 소형이므로 도심 근처나 섬 지역, 공항,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지 근처에 짓고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 대규모 송전망 비용도 줄어든다는 게 강점이다. 특히 글로벌 AI 전쟁으로 중요성이 높아진 데이터센터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때문에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도 차세대 원전기술로 SMR에 기술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도 향후 글로벌 SMR 시장 확대를 염두에 두고 사업진출을 꾀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미국 SMR 기업 뉴스케일파워에 7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인력교류, 기술협력, 글로벌시장에서 공동사업 추진 등의 협력을 구체화 중이다. 루마니아 SMR 사업 기본설계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현대건설은 미국 SMR 개발사 홀텍과 독점 계약을 맺고 원전 밸류체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 홀텍과 협력해 미시간 팰리세이즈 원전 부지에 300㎿급 SMR 2기를 연내 착공할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2023년 한국수력원자력과 혁신형 SMR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3월에는 한전KPS와 손잡고 SMR 분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DL이앤씨는 미국 엑스에너지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엑스에너지의 설계·조달·시공 파트너로 해외 공동 진출에 나선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SMR은 전기 출력이 낮아 대형 원전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 실제 현재까지 상용화된 SMR은 한 기도 없다. 부족한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다수 모듈을 운영할 경우 전체 단지 차원의 규모에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공공의 인식, 안전 우려, 핵폐기물 등의 우려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