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고차 시장이 달라졌다. 오랫동안 ‘레몬마켓’(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 비대칭이 큰 시장)의 대명사로 불리던 불신의 시장이 정보기술(IT)과 플랫폼 경쟁을 앞세워 ‘데이터 기반 투명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신차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중고차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데다 한국 중고차 인기 등의 영향으로 중고 부품 수출시장까지 뜨고 있다.
10일 중고차업계에 따르면 경기 둔화로 연간 170만대 수준으로 위축된 신차 시장과 달리, 중고차는 연간 거래량이 250만대를 넘기며 활기를 띠고 있다. 소비자가 차량을 직접 보지 않고 주문·결제까지 마치는 비대면 구매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로 확대되면서 시장 체질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1997년 등록제로 전환된 이후 영세업체 중심의 불투명한 구조가 고착됐던 중고차 시장은 2022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되며 판이 달라졌다.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와 플랫폼 기업이 잇따라 진출하면서 자본력과 기술 경쟁이 본격화됐다. 차량 이미지, 정비·보험 이력, 리콜 정보 등 흩어져 있던 데이터가 통합되면서 소비자도 매매업자와 대등한 정보로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중고차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고르는 시장”이라며 “정보 비대칭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전환의 선두주자는 케이카다. 2016년 업계 최초로 온라인 ‘내차사기 홈서비스’를 시작한 뒤 현재 전체 판매의 55% 이상이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소비자가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차량을 선택하고 결제하면 직접 배송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3일 내 환불할 수 있는 ‘3일 책임 환불제’로 신뢰를 얻었다. 엔카닷컴은 인공지능(AI) 심사 기능을 넣은 ‘비교견적 믿고 플러스’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같은 흐름에 힘입어 케이카는 올해 3분기 매출 6655억원(전년 동기 대비 14.8% 증가), 영업이익 240억원(40.3%)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이다. 판매 대수는 4만2476대(9.8%)로 시장 평균(3.5%)을 크게 웃돌았다. 이커머스 1만7462대(7.4%), 오프라인 1만3970대(12.1%), 경매 1만1044대(11.1%) 등 전 부문에서 고른 성장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구매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사라졌다”며 “이젠 중고차도 택배처럼 배송받는 시대가 됐다”고 전했다.
국내 중고차 산업은 내수를 넘어 수출로 확장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산 중고차 수요가 늘면서다. 올해 3분기 수출액은 15억 달러(약 2조2000억원)를 넘었다. 중고차 수출 덕에 중고 부품 시장도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폐차장이 직접 부품을 해체해 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해외 바이어들이 중고 부품을 사러 한국에 오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거래가 내수를 넘어 수출·부품 유통까지 확장됐다”며 “자동차 생태계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