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러 가지 고려해 판단하라’가 항소 포기 지침 아닌가

입력 2025-11-11 01:30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대장동 비리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입장을 밝혔지만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핵심인 항소 포기 외압 의혹은 더 증폭되고 있다. 정 장관은 어제 항소 포기 지시 여부에 대해 “보고는 받았지만 지침을 준 바 없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라는 정도의 의사표현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항소를 안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도 했는데, 대장동 일당 일부가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이 선고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 장관이 지침을 주지 않았다고 하지만 대장동 사건 1심 결과에 대한 그의 인식대로라면 의사표현 과정에서 항소 포기 쪽에 무게를 두고 대화가 오갔을 것이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판단하라’는 말 자체가 검찰에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야당은 정 장관 발언을 ‘외압 자백’이라고 규정했다. 그제 “법무부 의견을 참고하고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포기했다”고 밝힌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어제에는 “(장관 지시 여부는)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말을 아꼈다. ‘윗선’의 외압 여부가 항소 포기 이유를 풀 열쇠인 만큼 노 대행은 속히 자초지종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항소 포기에 국민들이 공분하는 것은 대장동 일당의 형량이 줄어들거나 복역 후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쥘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장관과 여당은 성남시가 돈을 받아내려고 민사 소송을 하고 있어 문제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사로 불법 수익금을 온전히 받아낸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항소 포기로 형사 소송에서 추징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민사에 미룰 게 아니라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여권이 그런 국민적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 대신 항소 포기 파동을 ‘친윤석열 검사의 항명’으로 규정하고 반격에만 골몰하는 것은 선후가 잘못된 일이다. 여권 주장대로 이번에 반발하는 일부 검사들이 검건희 여사 주가조작 사건과 디올백 사건 등의 기소 포기에 대해 침묵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 행동과 이번 항소 포기에 따른 국민들의 우려와 박탈감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권은 지금 국민들이 “징역 몇 년 살다 나오면 대박 터뜨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고 허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상소 포기를 마냥 두둔할 게 아니라 국민들의 우려를 가라앉히는 데 우선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