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잇따라 추진되면서 은행의 저축성 예금 상품에서 증시 투자금으로의 ‘머니무브’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증시 대기 자금이 9조원 넘게 증가하는 동안 은행의 입출금 예금이 21조원 넘게 감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분류되는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말 기준 85조4569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1월 말(55조5786억원) 대비 53.76%, 지난 9월 말(76조4474억원)보다는 11.79% 증가한 수치다. 통상 투자자예탁금은 주가 상승 기대에 비례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증가하는 예탁금의 출처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은행의 저축성 예금 잔액 추이와 비교해 추정한다. 증시 대기 자금이 늘고 은행의 예금 잔액이 줄었으면 주식시장에 투자하려는 고객들이 많아진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언제든지 바로 찾아 쓸 수 있는 예금) 잔액은 647조8564억원으로 9월 말(669조7238억원)보다 3.27% 줄었다.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8, 9월 두 달 연속 증가했지만 지난달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이 기간은 한국 증시가 급등하던 때다. 코스피는 지난 9월 1일 대비 30일 8.96% 올랐고 지난달에는 한 달 동안 18.86%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코스피 상승세에 맞춰 증시에 유동성이 쌓이는 모습이 투자자예탁금 등으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며 “모인 돈이 어디서 흘러왔는지 추정하기 쉽지 않지만 은행 쪽 자금이 줄어드는 모양새여서 예금에서 증시로 돈이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에서 1109억원을 순매수했다.
주식과 함께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암호화폐도 최근 거래대금이 줄어드는 등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코인 시황 중계 사이트인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의 지난 9월 말 대비 10월 말 거래대금은 24억2512만 달러에서 20억 2409만 달러로 16.54% 감소했다. 빗썸도 같은 기간 12억4802만 달러에서 9억9068만 달러로 20.62% 쪼그라들었다. 거래소 측 관계자들은 코인 거래 규모가 감소한 이유로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시장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점과 증시 활성화를 주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부가 특히 부동산 분야에서 정책적인 제약을 많이 걸고 있어 부동산 투자 자금이 증시로 돌아오는 머니무브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자본시장 부양에 대한) 정부 스탠스가 유지된다면 지속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1, 2차 상법 개정에 이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완화 등 증시 선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