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교수 철밥통’ 깨야 ‘서울대 10개 만들기’ 성공 보인다

입력 2025-11-12 00:07
전국 9개 거점국립대를 서울대급으로 끌어올리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3곳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입장이지만, 거점국립대들은 9곳이 동시에 시작해야 유의미한 변화가 가능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정문. 국민일보DB

교육·연구 소홀해도 페널티 없고
성과 내도 인센티브 미미한 현실
프로처럼 철저한 보상주의 도입
대학 체질 바꿔야 서울대급 가능

정부와 국회, 거점국립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내년 예산을 둘러싼 익숙한 공방처럼 보이지만 이번에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단순한 예산 쟁탈전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국립대 교수 사회의 ‘철밥통’을 깰 수 있느냐 마느냐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 거점국립대 9곳을 서울대급 연구중심대학으로 만든다는 구상입니다. 이재명정부 대표 교육정책이죠. 강원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가 대상입니다. 서울대 정도 되는 학교가 9곳 더 생기면 입시 지옥이 완화되고, 지역 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입니다.

예산 규모와 지원 대상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내년에 9개 대학이 아니라 3개 대학만 먼저 시작한다는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입니다. 예산이 부족하니 선택과 집중을 통해 3개 대학에 지원을 집중하고 추후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자는 것입니다. 거점대는 반대입니다. 개별 대학에 지급되는 예산 규모를 줄이더라도 내년부터 9개 대학 모두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연구역량 강화를 위한 연구중심 인센티브 프로그램에 1200억원을 책정하고 400억원씩 3개 대학에 지원할 계획입니다. 거점대들은 1800억원으로 늘려 200억원씩 9곳 모두에 나눠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정부는 인공지능 거점대학 지원 프로그램에 300억원을 책정해 3개 대학에 100억원씩 나눠줄 계획인데 거점대들은 450억원으로 늘려 50억원씩 9등분하라고 요구합니다. 거점대들은 정부안에서 1225억원을 더 책정하면 내년에 9개 대학이 동시에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예산 나눠먹기란 비판을 걱정합니다. 괜한 우려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거점대들은 그간 예산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었는데, 고작 3대 1 경쟁률인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버티는 모습입니다. 나눠먹기로 흐지부지된 과거 지방대 육성 사업들이 떠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거점대들은 3개 대학 우선 선정 방침이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국가균형성장발전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리로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떨어진 6개 대학이 속한 지역에서 홀대론이 나올 수 있다는 말도 합니다. 여당을 향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표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은근한 압박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예산철의 흔한 예산타령이겠죠.

핵심은 그 다음입니다. 거점대 총장들은 내년에 3개만 선정하게 되면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결국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거점대들이 서울대급 연구중심대학이 되려면 정부의 예산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수 사회의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교육과 연구를 등한시해도 별다른 페널티가 없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센티브가 크지 않은 국립대 특유의 조직문화부터 손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지난 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교육과 연구를 소홀히 해도 비슷한 급여를 받는 체계가 아니라 프로 선수 같은 철저한 보상주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거점대 총장들도 같은 생각이며, 이를 위한 내부 개혁안이 거의 완성 단계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거점대 내부 합의 수준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양 총장은 4년제 대학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거점대 내에서도 리더격 인물입니다.

양 총장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개혁안에는 교수 임용부터 승진, 보상체계 등이 망라돼 있다고 했습니다. 예컨대 논문 성과가 없는 교수 명단을 공개하거나, 공개적으로 강의를 평가해 강의를 배정하고, 교수 승진 심사 때 세계적 수준의 외부 연구자에게 평가를 맡기는 방안도 있다고 합니다. 탁월한 교수에게는 많은 보수와 풍족한 연구비, 그 반대의 경우 보수와 연구비를 대폭 삭감하는 시스템입니다. 연구중심대학들의 글로벌 기준을 따르는 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성공 조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거점대 내부 개혁안은 변화를 거부하는 교수 집단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국립대 총장은 직선제로 선출됩니다. 직원과 학생이 참여하기는 하지만 교수들의 입김이 절대적입니다. 총장 입장에서 개혁안 실행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차기 총장을 노리는 총장 주변 인물들도 반발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거점대 총장들은 정부안대로 3개만 선정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면 총장들이 구상한 개혁안을 꺼내놓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양 총장은 “선정된 3개 거점대에서 개혁안을 실행하려 하면 ‘왜 우리만 하는가’ ‘차라리 정부 돈 받지 말라’란 반발이 나올 것”이라며 “총장의 리더십이 아무리 견고해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점대 9곳이 단일대오로 ‘거점대 교수 기준은 이것’이란 기준을 세우고 정부가 뒷받침해줘야 반발을 누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성패는 결국 교수 사회의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총장들이 팔을 걷어붙인 부분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예산 나눠먹기를 위해 철밥통 논리를 전략적으로 끌어왔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거점대들이 마련한 개혁안을 들여다보고 타당하다면 이들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단순히 대학의 재정을 보조해주는 게 아니라 국립대의 전반적인 체질을 개선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말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