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싱가포르 태형

입력 2025-11-11 00:40

‘합종연횡’의 연횡 전술을 만든 중국 전국시대 지략가 장의는 초나라 왕과 만찬을 하다 옥구슬 절도범으로 몰려 600대의 태형을 받았다. 이는 역사에 기록된 1인 최다 태형으로 알려졌다. 태형으로 비참해진 몰골을 보고 우는 아내에게 “혀만 성하면 된다”고 다독인 일화는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운영된 5가지 형벌 중 첫 번째가 경범죄자 대상 태형이었다. 1920년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 일환으로 태형을 공식 폐지했다.

과거 유물로 취급되지만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 태형을 형벌 수단으로 이용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싱가포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4위, 세계 금융·무역의 허브로 꼽히는 나라가 태형을 제도화 했다. 성폭행, 공공 기물파손, 강도, 마약밀수 등을 저지른 16~50세 남성이 대상이다. 싱가포르 특유의 엄벌주의를 엿볼 수 있다.

싱가포르 태형이 세계적 화제가 된 때는 1994년이었다. 18세 미국 소년 마이클 페이가 자동차 등 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태형 6대,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 미 언론은 ‘후진국형 인권 침해’ ‘미국인은 동양인보다 피부가 얇아서 태형은 치명적’이라며 비판했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싱가포르 당국은 태형을 2대 줄여만 줬을 뿐 형을 집행했다. 지난해엔 30대 일본인이 성폭행 혐의로 일본인으로선 처음 태형을 선고받았다.

싱가포르 의회가 보이스피싱 등 온라인 범죄 피해가 잇따르자 사기범들에게도 태형(6~24대)을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형법개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싱가포르 태형은 간단히 볼 게 아니다. 집행관이 길이 1.5m·직경 1.27㎝의 나무막대로 도움닫기를 하며 최대 시속 160㎞의 회초리질을 해 1대만 맞아도 엉덩이가 피투성이가 된다고 한다. 보이스피싱으로 골머리를 앓는 나라들이 많아서인지 한국 등의 온라인 상에서 싱가포르 조치에 대한 지지가 높다. 페이 사건 당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미 국민의 53%가 ‘태형제 도입’에 찬성했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에겐 엄한 매타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