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는 연중 기획 ‘너와 나, 서로돌봄’를 시작하면서 한국교회 담임목사 500명, 교회 출석 성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목회자 90.3%, 성도 81.4%는 한국교회가 현재 위기의 시대에 놓여 있다고 응답하며 이를 극복을 위한 우선 과제로 ‘예배와 교육’에 이어 ‘이웃과 지역에 대한 소통과 돌봄’을 꼽았다. 이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과 그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나침반이었다. 한국교회가 돌봄을 신앙의 중심에 다시 놓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서로돌봄 기획은 돌보는 대상뿐 아니라 돌보는 자를 위한 회복의 필요성과 지역사회와 이룬 연대 돌봄의 확장성과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간 전해온 사례와 변화의 흐름을 되짚고, 돌봄의 미래를 향한 방향성과 과제를 전문가들과 함께 성찰한다.
돌보는 자를 돌보다…회복 공동체 확장
돌봄이 지속되려면 돌보는 자가 건강해야 한다. 이는 교회의 돌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돌보는 자를 위한 돌봄이 중요한 이유다. PK러브(대표 유한영 목사)는 교회 안에서 늘 섬김의 자리에 서야 했던 사역자와 그 가족을 위한 돌봄 공동체다. 이곳에서 목회자 자녀들은 신앙과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존재 회복을 경험하고 화요예배와 기도반, 가족 회복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서로를 돕고 있었다. PK러브의 유한영 목사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낯설고, 관심 밖에 있는 영역이었는데, 기사가 나간 뒤 목회자인 부모님의 이해가 깊어졌다는 후일담과 응원·후원이 이어졌다”며 목회자와 선교사를 위한 힐링 센터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지친 사역자와 신학자, 신학생이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회복하는 쉼의 장소 ‘아둘람의 집’은 사역자들이 다시 걸을 힘을 얻고 회복한 이들이 또 다른 이를 돕는 순환적 돌봄의 구조를 보여줬다. 소울프렌드(이사장 차창규 목사)는 목회자와 사모, 신학생을 위한 심리 상담 전문기관으로 지난 1년간 300여명을 지원했다. 탈진으로 시달리는 교역자들이 자기 돌봄과 감정 표현 훈련을 통해 건강한 사역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관계 기반의 치유 모델을 제시했다. 사모사랑센터(회장 권정이 사모)는 사모들의 정서적 회복을 위해 시작된 상담 사역으로 지난 27년간 2500여명이 마음을 나누는 창구가 되어주었다.
예장통합 여교역자 안식관(원장 김영미)은 은퇴 여교역자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안식처로 현재 26명이 입소해 예배와 중보기도, 교제하며 평생의 사명을 기도로 이어간다. 예수자랑사모선교회(회장 배영선)도 홀로 된 사모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선교 공동체로 성장한 뒤 교단과 지역 교회의 지원 속에 선교센터를 세우고, 장학사업과 나눔 활동을 통해 받은 위로를 다시 흘려보내고 있었다.
지역 사회와 세계를 돌보다
돌봄의 방법과 영역은 교회 담벼락 안에 머물지 않았다. 지역사회와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를 채우는 이웃 돌봄과 국내외 사역자들의 지속 가능한 사역을 위한 후방 돌봄 시스템까지 폭넓은 실천 사례가 소개됐다.
대흥동교동협의회(회장 장헌일 목사)는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서 지역교회와 주민센터, 지자체가 협력해 고독사 예방과 청년·노숙인 지원 등 복지 사각지대를 채우며 교회가 공공성과 선교적 사명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안산제일교회(허요환 목사)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해 장애인·노인·이주민·청소년을 위한 21개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지자체와 협력해 초등 아동 돌봄 프로그램도 진행하며 지역 내 돌봄의 기반을 확장했다.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황선욱 목사)는 성남시와 함께 ‘드림스타트’ 프로젝트를 통해 취약계층 아동에게 선물과 생필품을 지원하고, 출산 가정과 1인 가구를 위한 돌봄도 이어가며 지역 내 지속 가능한 섬김 모델을 구축했다.
인천평화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박양희)은 경로당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에게 정서적·신체적 돌봄을 제공하고, 교회 성도들은 섬김의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활동에 참여해 노인 돌봄과 지역 주민·교회·의료인이 함께하는 마을 돌봄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함께 돌봄’을 우선 가치로 삼으며, 신앙과 지역 돌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모델을 제시했다.
아시안미션(대표 이상준)은 해외 선교사에게 힐링바우처, 건강검진, 선교관, 캠프 등을 제공하며 사역자의 회복과 재충전을 지원했다. 특히 이랜드그룹과 협력해 숙박·의료·생활비 후원을 통해 번아웃 예방과 실질적 돌봄을 실천했다.
웨슬리사회성화실천본부(대표 홍성국 목사) 역시 선교사와 사역자에게 의료·숙소·차량·자녀 학사관 지원을 통해 후방 안전망을 마련한 사례다. 특히 선교사 자녀를 위한 ‘MK의 집’을 운영해 사역자 가족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를 실현하고 있었다. 이상준 대표는 국민일보 보도 후 한국해외선교회 개척선교회, MK NEST 등의 동역 제안이 있었다며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현장을 위해 지역 교회, 단체, 기업, 학교가 자원을 엮는 더 촘촘한 연결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장헌일 목사도 “진정한 돌봄은 주민참여를 기반으로 민관협력의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흥동교동협의회도 최근 구로구의 개봉1동교동협의회와의 협력해 돌봄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기독교한국침례회 내 통합돌봄위원회를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탰다.
자립 향한 돌봄, 공동체로 피어나다
사회 곳곳의 아픔을 지닌 이들을 위한 정서적 회복과 자립 지원, 공동체 회복을 위한 다양한 사역도 있었다. 행복한나눔(대표 최창남)은 미혼모·탈북민·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일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전국 13개 매장을 운영하며 지역 나눔 문화의 역할을 해냈다. 대기업과 개인이 기증한 재고 상품과 사회적기업이 만든 소셜 상품을 판매해 매출 일부는 급여와 긴급구호에 사용하고 자립 실현 모델로도 확장하고 있다.
선한울타리(대표 최상규)는 자립준비청년에게 멘토링과 쉼터, 교육을 제공하며 교회 기반의 사회적 가족을 형성하고 있다. 샘물교회(채경락 목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 사역은 현재 28개 교회가 참여해 신앙·생활·취업 교육까지 지원하며 청년들의 자립 여정을 함께했다. 산성교회(지성업 목사) 충현교회(한규삼 목사) 신길교회(이기용 목사)는 탈북민을 위한 예배와 멘토링, 생활 지원 등을 통해 공동체적 회복과 자립을 돕고 있었다. 사람들의 내면을 회복시키는 온라인 공동체인 마음의집(대표 정진)은 600여명이 참여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지지하며 성장하는 정서적 회복을 이뤄가고 있다. 사회적 아픔을 지닌 이들을 위한 무료 돌봄을 실천하면서 법인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구조도 갖추고 있다.
충현교회 통일선교부의 최준호 목사는 “새로 개척된 4곳의 탈북민교회를 선정해 협력할 계획이며, 이미 지원한 탈북민교회 중 자립한 교회와는 더 동역사역으로 전환해 전도와 선교를 함께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인식 전환·확장 필요…공동체·생태까지
전문가들은 돌봄이 단순한 사역 확장을 넘어, 지속 가능하고 상호적이며 공동체 중심의 모델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깊이 연결되고, 돌봄의 주체와 대상이 함께 회복되는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돌봄은 선택이 아닌 신앙의 본질이자 시대적 요청이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전체의 의제로 인식하는 전환 역시 중요하다. 실천신학대학원대 선교와디아코니아 연구소 소장인 이범성 교수는 “서로돌봄은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예수님의 모든 계명을 내포한 최종적 계명”이라며 “기독교적 돌봄은 일시적 연민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한 섬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약에 100회나 등장하는 ‘디아코니아’ 개념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돕는 자일 뿐 아니라 언제든 도움을 받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돌봄은 일방적 역할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공동체적 사랑의 실천”이라고 덧붙였다.
배현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기후정의위원회 전문위원은 “미시적 돌봄이 개인의 상처를 어루만진다면, 거시적 돌봄은 사회 구조와 생태계의 회복을 지향해야 한다”며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투트랙’ 접근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월 영남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을 단순히 통상적인 자연재해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우리 모두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생태적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에코 디아코니아’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서로돌봄 취재팀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