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앉아 있다 보면 환자 생활에 이미 ‘개인 참여형 의학’이 스며들어 있다고 느낀다. 아직 보편화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기술과 제도, 환자의 태도 변화가 맞물리면 앞으로 5년 내엔 지금과 전혀 다른 진료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웨어러블 기기만 해도 그렇다. 애플워치의 심방세동 탐지 기능은 2019년 미국에서 4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심장 연구(Apple Heart Study)에서 조기 발견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워치 알림을 받고 병원을 찾아 심방세동을 진단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직 외래 현장에서 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기술적 신뢰성이 쌓이는 만큼 부정맥 관리에 실질적인 도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당뇨 관리도 비슷하다. 연속혈당측정기(CGM)는 미국과 유럽에서 보험 적용을 받으며 일상적인 치료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국제 당뇨병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CGM을 사용하는 환자는 혈당 변동성이 줄고 저혈당 발생이 감소하는 이점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일부 환자에게만 쓰이지만 허가 기기 확대와 보험 적용 논의가 진행되는 만큼 향후 5년 내 손가락 채혈보다 더 흔해질 수도 있다.
고혈압 관리에서도 환자 참여형 방식의 효과가 입증된 사례가 있다. 2018년 영국의 연구(TASMINH4)에선 고혈압 환자가 원격 모니터링을 받으며 스스로 혈압을 재고 데이터를 의료진과 공유했을 때 외래 중심 관리보다 평균 혈압이 유의미하게 더 잘 조절됐다.
암 환자 관리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있다. 미국 뉴욕의 암 전문 병원인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SKCC) 연구팀은 항암 치료 환자가 집에서 전자 설문으로 증상을 보고했을 때 응급실 방문이 줄고, 생존율까지 개선되는 결과를 발표했다. 환자의 자가 보고 데이터가 실제 치료 효과에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국내엔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되진 않았지만, 정부가 디지털 치료제와 환자 보고 시스템을 제도권 안으로 가져오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정형외과 진료실에서도 환자 참여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 후 환자가 집에서 무릎 굴곡 각도를 직접 재서 보여주거나, 고관절 치환술 후에는 스마트워치로 측정한 보행 수를 가져와 회복 과정을 설명한다. 작은 참여지만 환자가 보여준 수치와 짧은 메모가 재활 방향을 조정하는 데 실제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진료실 대화가 훨씬 구체적으로 바뀌는 건 물론이다.
이런 변화가 한국 진료실의 일상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환자가 웨어러블 기기나 앱에서 모은 데이터를 직접 내밀어도, 병원 시스템에 바로 반영되진 않는다. 환자가 매일 기록한 혈압이나 활동량이 의사 진료차트에 자동으로 연동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움직임이 쌓여 앞으로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기술은 이미 생활 속에 들어와 있고 연구는 효과를 입증했으며, 정책도 그 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점은 환자의 참여가 곧 의학적 해석을 대신할 순 없다는 것이다. 환자의 데이터를 임상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다양한 변수와 위험을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여전히 의사의 몫이다. 최근 진료실에서 인터넷 정보를 절대시하거나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병원을 옮겨 다니는 환자들을 여럿 만난다. 이런 모습은 개인 참여형 의학의 본질을 흐린다. 참여의 의미는 ‘내가 아는 정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함께 검증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앞으로 5년은 참여형 의학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환자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의사는 그 데이터를 삶의 맥락 속에서 해석한다. 두 전문성이 만나야 최선의 결정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손목에 찬 시계, 스마트폰에 기록한 숫자, 작은 노트에 적어온 회복 기록은 모두 중요한 무기입니다. 하지만 그 무기는 의사와 함께 쥘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합니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