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 집중도 높고 대형주 중심… 지수에 막강한 영향력

입력 2025-11-11 00:08
사진=연합뉴스

‘외국인 투자자가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린다.’ 이 말대로 외국인 수급에 따라 코스피가 출렁이면서 시장의 시선이 그들의 움직임에 쏠리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달 코스피 4000선 돌파를 이끌며 개인 투자자를 웃게 만들더니 이달에는 대규모 차익 실현에 나서며 시장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7일까지 7조원어치가 넘는 코스피 주식을 내다 팔아 지수 하락의 주범이 됐다. 반면 2021년 기록한 종전 최고치(3316.08)를 돌파한 지난 9월 한 달간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총 7조4465억원 규모를 순매수했다.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한 지난달에도 5조3446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은 단순히 외국 국적을 가진 개인 투자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해외 연기금과 헤지펀드,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이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에 투자하거나 해당 지수에 높은 비중으로 편입된 종목을 매매한다. 매매 규모가 크고 거래에 상대적으로 일관성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코스피 방향성에 큰 영향을 준다.

개인도 7조 샀는데 지수 내린 이유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이 내놓은 물량은 대체로 개인이 받아내고 있다. 이달에도 개인은 7조원 넘게 순매수했지만 지수의 방향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코스피가 ‘가중지수(weighted index)’ 구조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는 상장사 849개의 주가 변동을 동일하게 반영하지 않고 시가총액이 큰 종목일수록 지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치도록 짜여 있다.

결국 같은 금액을 투자해도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매하는 외국인이 지수 흐름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SK하이닉스(약 -3조7100억원)와 삼성전자(-1조5000억원) 등 대형주 두 종목에서만 5조20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개인은 이들 종목을 3조9000억원어치 사들였지만 규모에서 밀렸다.

개인은 대신 대한조선(800억원), 달바글로벌(590억원) 등 시가총액 1조~2조원대 종목을 비중 있게 매수했다.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국인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종목에 투자하는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 종목은 두 자릿수 상승을 보여도 코스피 전체 흐름에는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매매 패턴에서도 외국인과 개인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상민 플루토리서치 대표는 “외국인은 글로벌 경기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로직(매매 원칙)이 있다”며 “반면 개인은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 파편화된 흐름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상승장에서도 주택 구매나 이사 자금이 필요하면 차익 실현에 나서는 등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최근 코스피에 들어온 자금이 MSCI나 FTSE 등 지수를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이들 지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주 비중이 높아 외국인 매매가 같은 시점에 대형주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외국인은 살 때 동시에 사고, 팔 때도 일제히 이익을 실현하는 등 매매 집중도가 개인과 다르다”고 말했다.

마음 바꾼 외국인, 사고판 종목은

이달 들어 외국인이 일제히 코스피 주식을 팔고 떠난 것은 그만큼 지수가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지난달까지 코스피는 연간 기준 70% 넘게 오르며 외국인의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했다. 연말을 앞두고 거래를 줄이는 외국인 특성도 작용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외국인은 통상 11월까지만 매매하고 연말에는 거래를 중단한다”며 “수익을 실현한 뒤 ‘북 클로징(회계 장부 마감)’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예상보다 높은 수익을 거둔 만큼 조기 북 클로징에 나선 것으로 보이며, 외국인 자금은 내년 들어서야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미국 단기채 시장의 불안도 영향을 미쳤다. 미 재무부가 장기채보다 단기채 발행 비중을 늘리면서 단기 자금시장에 부담이 가중됐고, 이로 인해 ‘인공지능(AI) 버블’ 우려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단기채 발행 확대가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 단기 금리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자 기술주 중심의 성장주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코스피뿐 아니라 뉴욕증시에서도 AI 관련 기술주 매도세가 나타난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반도체, 원전, 조선, 전력 등 그동안 코스피 상승을 이끌었던 주도주를 매도했다. 대신 사들인 종목은 LG CNS, SK스퀘어, LG이노텍, 이수페타시스 등 AI 관련주나 실적 개선 종목이다. 이에 아직 주도 업종이 교체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지호 경제평론가(전 LS증권 리서치센터장)는 “일부 외국계 펀드가 수익을 실현하는 것일 뿐 한국 시장에서 떠나는 국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 매매를 투자에 참고할 수 있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개인 투자자가 차액결제거래(CFD)를 통해 주식을 매매하는 경우도 있어서다. CFD는 증권사와 계약을 맺고 주식 가격 변동에만 투자하는 파생 상품이다. 개인의 계좌가 아니라 증권사 명의로 매매가 이루어져 기관이나 외국인 수급으로 집계된다.

이 대표는 “외국인 수급은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외국인이 매매 판단의 근거로 삼는 기업 이익 추정치 변화를 개인 투자자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