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앨범은 ‘디스토피아에서 노래하지만 시선은 유토피아를 향하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어요.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둡더라도, 세상은 더 밝은 쪽으로 나아가리란 믿음이 있죠.”
목소리와 기타로 울림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50·본명 조윤석)이 3년 만의 11집 정규 앨범 ‘또 다른 곳’으로 돌아왔다. 앨범 발매일인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안테나 사옥에서 만난 그는 “뉴스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정치·사회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지 않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신보에는 타이틀곡 ‘꽃이 된 사람’을 비롯해 9곡이 수록됐다. 앨범은 그가 구상한 ‘세 개의 우주’에서 시작됐다. 첫째는 ‘나’라는 우주, 둘째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우주, 셋째는 나와 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우주다. 그는 “우리는 두 번째 우주에 과하게 에너지를 쓴다”며 “이번 앨범에선 세 번째 우주와 관련한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캄보디아,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1998년 밴드 ‘미선이’로 데뷔한 루시드폴은 2001년부터 솔로로 활동하며 ‘오, 사랑’ ‘보이나요’ ‘고등어’ ‘꽃’ ‘그럴 때마다’ ‘너와 나’ 등 한 편의 시 같은 곡들로 사랑받았다. 2014년 제주도에 정착해 귤 농사를 지으며 음악 활동도 병행하는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음악적 사유를 확장하고 있다.
새 앨범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희망과 연대, 용기다. 루시드폴은 “과거에는 미래가 더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빠질 거로 비관하는 이들이 많다”며 “불안이 커질수록 분노와 혐오로 흐르기 쉬우나, 서로 손을 잡고 버티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앨범 작업 전 과정에 그의 신념이 담겼다. ‘연대’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스페인, 칠레,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연주자와 작가들과 협업했다. 환경에 대한 고민도 반영했다. LP는 폐기된 PVC를 재활용한 ‘리바이닐’ 방식으로 제작하고, CD는 최소한의 종이 포장만 남겼다. “작은 실천이지만 제작 과정에서 플라스틱 소비를 더 늘리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완성된 신보는 거칠지만 따뜻한,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서정적 음악으로 채워졌다. 루시드폴은 “싱어송라이터의 ‘홈메이드’ 감각이 느껴지는 음악이길 원했다”며 “다소 거칠지라도 노래의 정수와 정서만 살아 있으면 충분했다”고 강조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