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5곳 중 4곳 정년제 없는데… “과속 입법, 소수만 혜택 봐”

입력 2025-11-10 02:25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 주도로 연내 ‘65세 정년 연장’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경영계에서는 ‘과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3년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체 기업 5곳 중 4곳은 정년제를 운영하지 않는 실정에서 추가적인 법정 정년 연장을 밀어붙이면, 그 혜택을 보는 소수와 혜택에서 소외되는 다수 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청년 고용도 더 악화할 것이라는 게 재계 지적이다.

9일 기준 정년 연장을 담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고용자고용법) 개정안 11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11건 중 10건은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거나 공동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의 현실과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연령 사이 소득 단절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다만 개정안에 대한 상임위원회(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검토보고서에서도 섣부른 정년 연장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사항이 담겼다. 박해철 민주당 의원 개정안에 대해 손을춘 환노위 전문위원은 “현재 정년제 운영 사업체가 대부분 300인 이상 사업체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정년 연장 혜택이 대기업·공공기관에 집중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전국 178만9174개 기업(사업체) 중 정년제를 운영하는 기업은 38만9349개로 21.8%에 불과했다. 특히 기업 규모별로 편차가 컸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정년제 운영 비율이 95.3%에 달했지만, 100인 미만 소기업에서는 정년제 운영 비율이 21.2%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한 재계 관계자는 “대·중소기업 격차가 커지고 청년들도 대기업·공공기관·정규직 등 좋은 일자리를 선망하다 보니 중소기업은 인력 구하기도 힘들어 고령 근로자에게 더 일해달라 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력 미스매치’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강행되면 그 혜택은 소수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 종사자에게만 가고, 청년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채용 문턱은 더 좁아진다는 주장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4월 정년 60세 연장 시행 이후 지난해까지 고령 근로자가 1명 늘어났을 때 청년 근로자가 최대 1.5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간 부문에 정년 규정을 도입한 일본의 경우 60세 정년제 도입도 노동계의 최초 요구 이후 30여년 지나서야 시행했고, 60세 정년 시행 후 15년이 지나서야 65세 고용 의무화를 도입했다. 기업의 재고용을 폭넓게 허용하고 장려금 등 정부 보조금도 지원했다. 재계에서는 일률적인 정년 연장 법제화 대신 업종별, 규모별 탄력적 적용이나 기업의 자율적 재고용 촉진 유도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