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복지 예산에 줄줄이 ‘AI’… 예타 면제·중복 우려도

입력 2025-11-09 18:42 수정 2025-11-09 18:44

보건복지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보건·복지 정책 사업을 대거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부문 AI 도입을 추진하는 정부 기조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유사·중복 사업이 있는 데다 단기 성과에만 급급한 예산안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6년도 예산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에 신규 편성된 AI 관련 사업 예산 규모는 665억9000만원이다. 보건·복지 분야의 AI 기술 상용화에 500억원, 연구·개발(R&D)에 107억2000만원, AI 시범사업에 58억7000만원이 각각 배정됐다.

눈에 띄는 부분은 신규 예산의 75.1%(500억원)를 차지하는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복지·보건 분야) 사업’이다. 이는 중앙부처 10곳이 참여하는 ‘AX-Sprint 300’ 사업 중 하나다. 복지부는 고독사 예방, 재가돌봄 등에 AI를 접목한 기술·서비스 개발을 목표로 한다. 사업 추진 계획에선 1~2년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제품·서비스가 대상으로 지목됐다.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선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됐다. 통상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업에 적용하는 재정 당국의 사업성·경제성 등 검토가 빠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6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서 “기술·서비스 상용화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복지부가 사업설명자료에 성과지표로 적은 ‘개발·설계 건수’ ‘기술 적용 건수’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는 AI 사업의 부처 간 중복 문제도 거론했다.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각각 추진하는 상용화 지원 사업에는 ‘만성질환 AI 관리 모델 개발’이 포함됐다. 복지부는 ‘개인형 맞춤형 관리 모델’, 식약처는 ‘생성형 AI 기반 챗봇’이라는 명칭을 각각 쓰고 있지만, 실제 사업 내용이 유사할 수 있어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야당에선 AI 관련 사업에 적용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위법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가재정법상 면제 사유인 ‘긴급한 사회적 상황 대응’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 기술 수준을 고려한 정교한 사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소영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복지 AI 기술은 걸음마 단계”라며 “AI가 복지 종사자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위기 예측·예방이 가능하도록 고도화하기 위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