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은 세금을 쓰는 곳일까, 가치를 만드는 곳일까. 이 단순한 질문이 지역사회 신뢰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시민이 품어온 질문이 있다. “정말 필요한 기관일까?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을까?” 이런 의구심에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다. 민간기업은 매출과 이익으로 성과를 증명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다르다. 주민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했는가, 지역사회에 얼마만큼의 변화를 만들었는가는 회계장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결국 일은 많지만 효율은 낮다는 오랜 편견이 굳어졌다.
서울 노원구시설관리공단은 이 편견을 깨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지난해 공단은 ‘원가 분석을 활용한 공익적 편익 분석’을 도입해 보이지 않던 공공서비스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했다. 공단의 직접 수입은 110억원에 불과해 회계상으로는 노원구 지원예산 256억원에 의존하는 적자 기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석 결과 325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투입 대비 127%의 가치창출률을 기록한 것이다. 겉으로 적자처럼 보이던 기관이 실제로는 69억원의 순가치를 만든 셈이다.
눈에 보이지 않던 절감 효과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주3회 수영 강습의 경우 민간 수영장 월 이용료 10만원, 공단 수영장 5만원으로 주민 한 사람은 매달 4만원을 절약한다. 연간 5000명이 이용하면 24억원의 절감 효과가 생긴다. 공원 산책로를 걷는 주민의 건강 개선, 주차 문제가 심각한 골목의 혼잡 완화, 퇴근 후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취미로 인한 삶의 질 향상처럼 주민이 체감하는 비용 절감, 건강 증진, 환경 개선 효과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분석 결과 지역사회가 얻은 편익은 204억원에 달했다. 더 많은 예산 없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물론 이번 분석이 완벽하지는 않다. 건강 증진 효과의 개인차나 공동체 형성 같은 정성적 가치는 여전히 측정하기 어렵다. 향후 지방공기업평가원 등 전문기관과 협업해 공기업의 가치 창출에 대한 분석 틀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측정하려는 용기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 관리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 투명성과 책임감이 신뢰를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이다.
노원구의 시도는 25개 서울 자치구의 공공기관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각 자치구가 적용한다면 서울 전역 주민이 누리는 공공서비스의 가치를 눈에 띄게 드러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공공가치가 효율성만이 아니라 신뢰와 포용성 강화를 통해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단의 시도는 그 방향의 첫걸음이다. 공공기관이 만든 가치를 수치로 증명하고, 그 결과를 주민과 공유할 때 신뢰는 다시 자라난다. 공공기관은 단순히 세금을 쓰는 곳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기관이다. 그 가치를 드러내려는 노력 자체가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