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타워 붕괴 사고로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부터 부처 장관들까지 공공기관 산업재해에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지만 사고 위험과 예방, 책임 주체가 제각각인 현실은 개선되지 않으면서 산업 현장의 사고 위험은 줄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발전 공기업은 설비 정비·보수·하역 등 위험 공정에서 외주 비율이 높아 산재 피해도 하청 근로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 8월까지 발전 공기업 5개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피해 근로자 242명 중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비중은 85.1%(206명)다.
이번 붕괴 사고가 발생한 동서발전의 하청업체 근로자 산재 비중은 94.7%(36명)로 5개사 중 가장 높았다. 사고 역시 원청인 동서발전이 철거 공사를 발주하고 HJ중공업이 시행을, 발파 업체인 코리아카코가 하도급으로 해체 공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에 이어 지난 6월 김충현씨 사망 사고가 발생한 한국서부발전도 하청 근로자 산재 비중이 75.0%(33명)에 달했다.
반복된 하청 사고의 원인은 도급 구조 자체보다 불분명한 안전관리 체계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전사고 관리에 원청부터 하청, 재하청까지 여러 의무 주체가 엮여 있지만 사고 예방 의무와 책임 범위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 현장의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해체 공사 등은 전문성을 위해 외주가 더 효율적인 경우도 많다”며 “안전관리 범위와 책임 주체에 대한 규정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책임 주체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산재 근절 정책도 사고 예방보다 처벌 강화에 치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관련 법을 개정해 중대 재해에 책임이 있는 기관장에 대한 해임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 1회 공시하던 산재사고 사망자 수도 분기별로 공시하는 등 안전 관련 평가·공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사고 발생 공공기관에 대한 책임을 더 강하게 묻겠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하도급이나 외주화 관련 규제는 지금도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며 “계속된 산재에도 사고 예방 시스템을 개선하기보다 제재 엄벌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