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이 서울에 자가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아내 덕분이었다. 김 부장 스스로는 집값에 거품이 끼었고 일본처럼 폭락할 거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자신의 인생에 대출은 금기사항이고, 집값이 떨어지면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며 반대했다. 반대에 부딪힌 아내는 홀로 부동산에 가 집을 계약했다. 살 때보다 두 배나 오른 집의 호가를 확인하는 김 부장의 흐뭇함은 사실 그와 정반대로 행동한 아내의 과감함에 크게 빚진 것이었다.
웹툰·드라마로도 나온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속 김 부장의 부동산 매입 과정은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다. 부동산 폭락론이 유행처럼 번지며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오르내리던 때를 지나 자고 나면 속출하는 신고가에 ‘벼락 거지’라는 자조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김 부장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 어떤 가정은 김 부장의 기다림을, 어떤 가정은 아내의 과감함을 택했고 결과는 아는 대로다. 소설이 연재를 시작한 2021년 3월은 선택에 따른 안도의 한숨과 후회의 한탄이 한데 뒤섞여 넘쳐나던 때였다.
문재인정부 시절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자신 있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는 대통령의 말을 들은 이들의 믿음을 되가져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이 10·15 부동산 대책 후 “지금 사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며 “시장이 안정화돼 집값이 떨어지면 그때 사면 된다”고 한 발언에 여론의 포화가 쏟아진 건 그 믿음을 아무 일 없다는 듯 당연하게 전제한 것이 컸다.
부동산 논란이 불거진 공직자들이 내놓는 사과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에 ‘국민 눈높이’가 있다. 이 전 차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설화와 ‘갭투자’ 논란에 “배우자가 실거주를 위해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국민 여러분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는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이 전 차관 사퇴 후 공직자가 정책을 실행하고 발언하는 데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했다고 사과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서울 개포동 아파트 갭투자 지적이 나오자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했다.
이는 공직자들이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라고 크게 다른 눈높이를 가졌을 것 같진 않다. 국민 상당수는 가능하다면 김 부장 아내처럼 자녀 교육이나 이사 다니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혹은 더 넓고 좋은 환경을 이유로 집을 사고 싶어 한다. 또 많은 이들이 집값 상승에 대한 걱정 등을 이유로 당장 살지 않더라도 전세를 끼고 사놓으려 한다. 그런 점에서 공직자들이 말하는 눈높이 문제는 국민과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목표로 하는 정책 혹은 말과 실제 그들이 딛고 선 곳의 높이 차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전 차관이 10·15 대책 이후 설명한 대로라면 그는 김 부장의 생각에 가까운 부동산 시장을 의도한 것 같다. 정책 효과로 집값이 빠질 때, 집값이 유지되더라도 소득을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보면 그렇다. 이상적이지만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값은 김 부장 아내의 과감함에 더 가까운 흐름을 보여 왔다. 목표에 걸맞은 수단이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정책이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선 목표의 당위와 함께 적당한 때 괜찮은 집을 사려는 국민의 눈높이를 감안한 수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잦고 더 센 규제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요와 공급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에 더 몰두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