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팬덤 영치금

입력 2025-11-10 00:40

한국 사회에서 희한한 팬덤 현상 중 하나는 대규모 화환 행렬이다. 현재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는 화환이 줄지어 서 있다. 여권의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을 응원하는 화환들이다. 얼마 전 인근 대법원 앞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내란 재판을 맡은 지귀연 서울지검 부장판사를 응원하는 화환이 잔뜩 배달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린 지난 4월 헌법재판소 주변에도 탄핵 찬반 화환 수백개가 맞대결을 펼쳤다. 2020년에도 법무부 장관 ‘추미애 꽃다발’과 검찰총장 ‘윤석열 화환’이 산더미처럼 몰렸다.

정치인 후원금 모금에도 팬덤 현상이 스며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을 앞두고 예비후보 후원금 개시 단 하루 만에 법정 한도인 29억4000만원을 채웠다. 일주일 뒤 한동훈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그보다 빠른 11시간 만에 한도를 채웠다. 한 후보 캠프는 “제왕적 후보도 23시간 걸렸는데 우린 그 절반도 안 걸렸다”고 밝혔다. 모금 속도가 팬덤 세 과시 척도가 된 셈이다.

이제는 수감자 영치금까지 팬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재구속된 지 석 달 만인 지금까지 6억5000만원의 영치금을 받았다고 한다. 영치금으로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하루 사용 한도액이 2만원이라 89년간 쓸 수 있는 돈이다. 영치금이 화제가 된 건 처음이 아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가 수감 2년이 됐을 때도 2억4000만원의 영치금이 전해져 당시 서울구치소 1위를 기록했다 .

영치금 답지나 후원금 쇄도, 화환 행렬 등은 정치적 의사 표현의 일환이다. 순수한 응원의 마음도 없지 않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팬덤의 결과이고 그로 인해 본래의 좋은 뜻이 희석되기도 한다. 때로는 팬덤이 진짜 민의를 가리거나 왜곡할 때도 있다. 제3자에게는 과도한 팬덤이 되레 해당 정치인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그런 비정상적 팬덤이 줄어들게 하려면 결국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정치권 내부에서 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