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편애주의자가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생애 3년간 적어도 세 번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막 5:37), 오늘 본문의 변화산 사건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하실 때(막 14:33)입니다. 죽음이라는 인생 최대의 한계상황을 돌파하실 그때, 예수님의 모습이 육체에서 영체로 바뀌는 신비롭고 황홀한 체험을 할 그 때에,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흐르도록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신(눅 22:44) 그 최후의 시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순간들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첫째 베드로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로마제국 황제의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베드로의 이 고백이 예수님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이 반석은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기초로 세워진 신앙공동체입니다.
베드로를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합니다. 수제자란 유사시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제자들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집 안에 모여 있었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제자들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듯 베드로를 믿고 의지했습니다.
둘째 야고보는 ‘소망’을 상징합니다. 야고보의 별칭은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입니다.(막 3:17) 그 이유는 성격이었습니다. 천둥번개와 같은 성격이란 뜻입니다. 야고보는 성격대로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먼저 순교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절에 보면 헤롯이 야고보를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예수 안에서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이 있기에 부활이 있고 부활이 있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야고보의 순교를 바탕으로 더 부흥했습니다. 그러므로 순교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셋째로 요한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요한은 후세 사람들에게 ‘사랑의 사도’라 불릴 만큼 사랑을 강조했고 몸소 실천했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요한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13:23, 21:20)라 표현했고 그의 마지막 설교인 요한일서 4장의 주제는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항상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가신 것은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처럼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유영상 목사(청송백자교회)
◇경북 청송군에 위치한 청송백자교회는 이름처럼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 자리한 교회입니다. 교회 주변 동서남북은 모두 청송 특산물인 백자사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담임 유영상 목사는 서울장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농촌 교회의 소명과 생명력 회복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