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다시 한계선을 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와 한국금융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5조8000억원으로, 종전 최대치였던 2021년 9월 13일의 25조7000억원을 돌파했다. 불과 석 달 새 4조원 넘게 불어난 규모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신용융자는 주가가 크게 떨어져 반대매매로 이어지면 ‘빚의 악순환’으로 언제든 치달을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건 이번 빚투 광풍이 사회 구조적 불안과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2030 청년세대는 근로소득으로는 치솟는 집값과 자산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박감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도 불사하며 주식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2021년에도 신용융자 잔액이 25조원을 넘었을 때, 코스피는 반년 만에 1000포인트 넘게 곤두박질쳤다. 이번에도 개미들만 반대매매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마치 주가가 정책 성과인 양 자화자찬에 열을 올리는 정부와 정치권의 안이한 인식이 더 문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가 “코스피 4000 돌파는 국민의 자신감 회복”이라며 시장 과열을 축하하고, 일부 정치인은 길거리에 ‘코스피 4000시대 개막’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은 안갯속에 갇혀 있다. 지난주 미국 나스닥 시장은 ‘AI 거품론’이 다시 고개를 들며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연방정부 셧다운 불안, 12월 금리 인하 불확실성, 그리고 트럼프 관세정책을 둘러싼 미 대법원의 부정적 시각까지 겹치며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증시 활황’을 치적으로 포장하는 건 위험천만하다.
현재 빚투 자금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15.8%)와 자본재(27.7%) 업종에 집중돼 단 한 번의 조정에도 증시 급락 위험이 큰 상황이다. 레버리지로 생긴 거품은 외부 충격 한 번에도 터졌던 경험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런 상황이 현실이 될 경우 정부와 정치권은 주식 투자는 자기책임하에 하는 것이라고 둘러댈 건가. 증시 성과는 경제 실적과 체력에서 비롯돼야 한다. 금융당국은 더 늦기 전에 신용융자 관리와 투자자 보호 대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