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 포기, 대장동 피의자만
유리해져… 직을 걸고 맞선
이도, 책임지려는 이도 없다
유리해져… 직을 걸고 맞선
이도, 책임지려는 이도 없다
검찰이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했다. 일선 수사·공판팀은 지난달 31일 선고된 1심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심에서 다퉈야 할 쟁점이 남았다는 의견을 상부에 보고했다. 항소제기 시한이 임박한 지난 7일 밤, 수사팀은 항소장을 들고 법원 앞에서 대기하며 최종 결재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지만,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뇌부는 끝내 항소를 불허했다.
통상적으로 검찰은 법원의 판결이 공소제기 내용이나 구형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급 법원의 판단을 구한다. 특히 대장동 사건처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서 항소를 포기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구형보다 높은 형이 선고됐거나 수사·기소 과정에 명백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이 ‘기계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항소를 통해 끈질기게 해소되지 않은 법리적 쟁점들을 다퉈 온 관행을 고려하면 이번 항소 포기는 그간 수사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는 ‘자기 부정’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검찰이 자살했다”는 격한 표현까지 동원해 가며 검찰의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그런데도 검찰 수뇌부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정민용 변호사가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은 점을 근거로 들지만,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 나머지 핵심 피고인들의 형량은 구형에 미치지 못했다. 배임액 산정의 불명확성 역시 상급심 판단이 필요한 핵심 쟁점이었다. 항소를 통해 법리적 쟁점들을 다퉈볼 기회를 검찰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실제 수사·공판팀은 항소 불허 직후 이례적으로 공개 입장문을 내 “428억원 뇌물공여 약속과 내부정보 이용이익 취득 혐의 등은 재판부조차도 대법원 판례가 없다고 언급했다”며 상급심 판단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대검 수뇌부는 이런 수사·공판팀에 별건 수사와 공소사실 변경의 적법성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달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법원이 검찰의 별건 수사를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을 때도 항소했던 검찰이었다. 형평성과 일관성의 측면에서 궁색한 설명이다.
이번 항소 포기로 인한 실질적 효과는 피고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피고인들만 항소를 제기한 상태가 됐고, 형사소송법상 ‘불이익 변경금지’ 원칙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는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무죄로 결론 난 일부 혐의는 뒤집힐 여지가 사라졌다. 검찰이 주장한 민간업자들의 부당이득 7886억원 가운데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추징금은 428억원에 불과하다. 그 차이에 대한 법적 판단을 다시 받아볼 여지마저 사라졌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결국 이번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대장동 사건은 과거 성남시장 출신인 이재명 대통령이 연루된 의혹이 제기된 사안이다. 검찰의 결정이 어느 방향이든 정치적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검찰은 더욱 절차와 원칙을 앞세웠어야 했다. 항소 포기 결정은 그보다 정치적 파장을 먼저 헤아린 듯한 인상을 남겼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참담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 직을 걸고 이 결정에 맞선 이도, 이 결정에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다.
이번 항소 포기 결정에는 단순히 한 사건의 종결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개혁 논의는 ‘정치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서 시작됐다. 그 불신을 불식시켜도 모자랄 판에 또다시 정치적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수뇌부의 판단이 튀어나왔다. 검찰이 왜 개혁의 대상이 됐는지를 스스로 입증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행보를 반복한다면 검찰개혁 명분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현수 사회부 차장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