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수교 60년, 한·일 관계의 미래

입력 2025-11-10 00:35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60년간 한·일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화했다. 1965년 당시 한·일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1대 30이었다면 현재는 1대 2.5 수준까지 좁혀졌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동시에 진전되며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선진국이 됐다. 한·일은 바야흐로 ‘민주평화론’의 구조적 기반을 갖게 됐다.

한·일 관계 60년사를 정리하면 4개의 시기로 나뉜다. 1시기(1965~1989)는 냉전 속에서 양국은 미국과 더불어 반공 협력을 우선했다. 과거사 갈등은 잠복했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성장했다. 2시기(1990~2009)는 탈냉전기로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속에 과거사 갈등이 표면화됐지만 동시에 ‘김대중·오부치 21세기 파트너십 선언’이 성립해 한·일 협력 모델이 제시되기도 했다. 3시기(2010~2022)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 한·일 관계의 원심력이 커졌다. 사법부의 위안부 및 강제동원 판결, 일본의 수출 규제와 ‘사죄 피로’ 여론이 맞물리며 양국 관계는 급속히 악화해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 노재팬운동, 코로나로 인한 인적 교류 단절까지 전 방위적 갈등이 전개됐다.

그러나 2023년 윤석열정부의 징용 ‘제3자 변제’ 해법 이후 국면은 반전됐다. 셔틀 외교가 복원되고 대화 채널이 가동되며 관계는 눈 녹듯 복원됐다. 과거사라는 뇌관에 ‘원점 타격’을 가한 결과였다. 동시에 국제정치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러·우 전쟁, 북·러 군사 밀착, 대만해협 긴장, 중동 분쟁, 보호무역주의 확산, 그리고 트럼프 2기 관세 폭탄과 방위비 압박이 겹치며 글로벌 안보·경제 질서는 분열을 노정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협과 경제질서의 요동 속에 한·일은 어느 때보다 전략적 이해와 이익을 공유하게 됐다.

올해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실용외교 관점에서 일본과의 공조 협력을 추구하는 노선을 정립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와의 3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은 경제·문화·안보에서의 전략 협력 필요성을 재확인했고, 5개 영역의 협력 계획을 담은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는 경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와 미래 협력을 약속했다.

향후 한·일 관계가 당면한 과제는 3가지다. 첫째, 대일 외교에 대한 국내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국민이 체감하는 이익이 없으면 협력 외교는 오래가지 못한다. 쉥겐조약같이 입국 절차 간소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둘째, 과거사 갈등을 ‘해결’보다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징용 해법의 안정적 이행, 위안부·교과서·야스쿠니 등 이슈에 대한 전략적 관리가 요구된다. 셋째,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으로 자유무역의 영토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는 남북·북미·북일 관계까지 아우르는 한국 외교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 속에서 한·일 협력은 한국의 전략 자원이다. 냉전하에 독일과 프랑스가 과거사를 극복하고 유럽의 통합과 번영을 주도했듯 21세기 한·일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동 노력하는 미래 비전 추구가 바람직하다.

한·일 양국은 1998년 파트너십 선언을 바탕삼아 미래 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해 ‘파트너십 선언 2.0’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파트너십 선언 30주년이 되는 2028년을 목표로 한·일 공생 협력의 정신과 분야별 실질 방안을 담은 액션플랜을 양국이 공동 노력으로 작성해 정상 선언으로 발표하길 바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