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 태극마크 뒤엔 어머니의 힘”

입력 2025-11-10 02:13
청각장애를 딛고 내년도 사격 국가대표로 발탁된 김우림이 총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지난 9월 말 내년도 사격 국가대표 선발 명단이 발표됐다. 남자 10m 공기소총 종목에 김우림(27·보은군청)이 이름을 올리자 사격계가 들썩였다. 김우림은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한 청각장애 선수다. 2021년부터 장애인 국가대표로 활약해 온 그가 이번엔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뤄 단 네 자리 중 하나를 따냈다. 국가대표는 올해 열린 7개 대회 중 5개 대회의 상위 성적을 바탕으로 선발됐다.

두 개의 태극마크를 달게 된 김우림은 “신기하다”고 입을 뗐다. 그는 “늘 생각은 했지만 쉽게 되진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며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방심하지 않고 실력을 유지하자는 생각만 한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도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연달아 마치자마자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을 위해 또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김우림은 신기록 현황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지난 5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해서 열린 대구시장배 전국사격대회 10m 공기소총 남자 일반부 본선에서 635.2점으로 1.1점을 더 쏴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단체전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2관왕에 올랐다. 지난달 장애인체전에선 청각장애 선수 대상 세계신기록(630.5점)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다.

10m 공기소총은 10m 떨어진 거리에서 샤프심 굵기의 0.5㎜ 표적에 60발을 쏘는 종목이다. 만점은 654점(10.9점씩)이다. 김우림의 한국신기록은 평균 10.6점씩 쏜 셈으로 60발 대부분을 표적에 명중시켰다는 의미다. 한 발을 쏠 때마다 총을 내려놓고 길게 쉬어야 할 만큼 집중력을 쏟아붓는 일이다. 김우림은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평소엔 그 평정심이 어떻게 하면 단련될지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우림이 처음 총을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누나를 따라서였다. 세 살 터울의 누나 김고운(30·BDH파라스)도 어린 시절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는데 먼저 사격의 길에 들어섰다. 홀로 자식 둘을 키우느라 형편이 여의치 않았지만 어머니는 딸의 꿈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더 나아가 아들의 손까지 잡고 훈련장을 찾아갔다. 그 길로 사격을 시작한 김우림은 누나와 함께 국가대표가 됐고, 2022년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데플림픽에서 나란히 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우림은 “예전엔 누나한테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나도 도움을 주고 있다. 서로 많은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김우림은 누나 김고운과 함께 청각장애 국가대표로도 활약하고 있다. 남매는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도쿄 데플림픽에서 또 한 번 나란히 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사격을 시작할 당시 고향 광주엔 장애인 선수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하루 교통비만 7000~8000원에 달하는 담양까지 꼬박 3년을 버스를 타고 오가야 했다. 특히 사격에선 쏘고 듣는 과정도 중요하다. 표적에 맞을 때 나는 소리가 조금씩 달라서다. 소리를 들으면서 분석해야 하지만 그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한참 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소리가 없어도 유추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데도 고민이 컸다. 2022년 데플림픽 전까진 돈을 벌기가 쉽지 않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대학생 시절 한 달 식비는 5만원이 전부였다. 끼니를 빵 하나로 때워야 할 때도 많았다. 기량이 정체하면서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든 때이기도 했다. 그는 “2021년 보은군청에 입단했을 때도 실적이 안 좋았다. 1년 만에 잘릴 수 있다는 얘기도 있어서 걱정과 고민이 아주 많았다”고 말했다.

김우림은 그때를 돌아보며 “사실 사격이 재미가 없었다”고 웃으며 털어놨다. 그는 “사격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하던 거니까 그냥 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청각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사격이었기 때문에 놓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연일 신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요즘은 재미가 붙은 상태라고 했다.

한때 잘릴 걱정을 하던 그는 어느덧 소속팀의 주장이자 맏형이 됐다. 양승전 보은군청 사격팀 감독을 만난 뒤 김우림은 데플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등 기량이 만개했다. 그는 “감독님이 잘 이끌어주시니 나도 포기하지 않고 기량을 끌어올리자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장이란 책임감으로 팀 우승을 위해서 더 신경을 쓰게 됐다. 그때부터 기량이 많이 오른 것 같다”고 돌아봤다.

비장애인 국가대표라는 꿈을 이룬 기쁨도 잠시 김우림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곱씹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가문의 영광”이라면서도 “자만하지 말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홀로 남매를 뒷바라지해온 어머니에게 최근 남매는 아파트를 선물했다. 이날 수화통역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대화로 인터뷰를 이어가던 김우림은 어머니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다”며 직접 글로 적어 내려갔다.

“어릴 적부터 한부모 가정으로 키워주신 어머니의 노력과 삶에서 배운 것 같습니다. 아파트 선물로도 어머니의 고생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 선수 생활을 더 잘하려고 합니다. 오랜 선수 생활 동안 마음가짐 굳게 잡혀가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삶이 큰 몫이 돼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진짜 선물은 3년 뒤 있을 LA올림픽 메달이라고 했다. 지금은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당장 이번 도쿄 데플림픽에선 누나와 함께 또 한 번 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김우림은 지난 대회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지만 이번엔 확실히 금메달을 목에 건다는 각오다.

허이욱 데플림픽 사격 국가대표 코치는 “김우림의 성과는 그만큼 노력을 많이 했다는 증거”라며 “오래 해왔던 노하우들이 이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슬럼프가 길었던 만큼 이제 최종 목표까지 꾸준히 변함없이 갈 수 있도록 자신을 잘 잡아서 LA올림픽까지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김우림은 지난 5일 이집트 카이로로 떠났어야 한다. 아시안게임 전초전 격인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하지만 김우림은 출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출전을 포기했다. 선발전 1, 2위는 지원을 받지만 3, 4위는 자비로 나서야 해서다. 아쉬울 법도 하지만 김우림은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됐다”고 덤덤히 말했다.

김우림은 긍정적으로만 보이는 성격도 타고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격을 통해서 점점 단련된 것 같다. 원래는 부정적이고 잡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며 “신인 선수들한테도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말고 마음을 최대한 편한 상황으로 루틴을 잡아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천=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