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뇌실험

입력 2025-11-08 00:40

사람의 차이를 뇌구조에서 찾는 건 과거부터 흥미로운 주제였다. “여자는 좌뇌가 발달해 언어에 강점이 있고, 남자는 우뇌가 더 발달해 수학을 잘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지금도 널리 떠돌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인간은 뇌를 유기적·통합적으로 활용해 남녀 뇌 기능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21세기 들어 정치 양극화로 인해 진보와 보수 인사들의 성향 차이를 뇌와 연결시키는 연구가 늘었다. 2011년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측이 학생 90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수 성향 학생들은 공포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부분이, 진보 학생들은 새로운 자극에 민감히 반응하는 ‘전대상회’ 쪽이 두꺼웠다. 2013년에도 영국에서 비슷한 내용의 논문이 발표됐다. 보수 인사들은 안전 지향적이고 진보 인사들은 도전 지향적이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뇌는 따로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백지원 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측으로부터 뇌를 실험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우파 인사를) 실험실 원숭이로 만들겠다는 떳떳함에 역겨운 감정이 치밀었다”는 글을 남겼다. 그알 측은 “정치적 견해 차이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과 갈등을 겪은 사례를 다루기 위해서”라 했지만 의도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진영 갈등이 심한 판국에 방송이 일반화 오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큰 듯하다.

사실 뇌 활동은 선천적인 점 외에 외부 환경 영향도 많이 받는다. 지난해 한 국제연구팀이 UCL 발표를 검증했다. 90명의 10배가량인 928명의 뇌를 분석한 뒤 정치 이념과 뇌구조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권력만 잡으면 왜 이성을 잃는지가 더 궁금하다. 미국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권력자의 뇌가 (공감능력을 상실한) 전두엽 손상 환자의 뇌와 비슷하다”고 했다. 문제 많은 정치인·공직자들의 뇌실험이 필요할 때 아닌가 싶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