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대가 일제히 한·미 관세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는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양국 간 조약이 아닌 양해각서(MOU) 수준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야당은 전례없는 대규모 해외투자로 국가 재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반드시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헌법 60조를 근거로 국가·국민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안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 등의 지적에 “조약이라면 비준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 협상 결과는 양국 간 MOU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로 조약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MOU 통과가 기업 부담하고도 연계돼 있어 속히 처리해야 하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속한 처리를 위해 국회 비준이 아닌 특별법 형태로 국회 동의를 받겠다는 뜻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한·미 관세협상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양해각서로 국회의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전날 “관세 합의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국회 비준 등의 대상은 아닌 것으로 실무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 총리는 관세협상 타결 전인 지난 9월 16일 대정부 질의에서 “대미 투자펀드와 관련해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데 국회 비준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재정적 부담을 지는 사안이라면 국회 동의를 요청하고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중요한 재정적 부담을 전 국민에게 지울 수 있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이번 협상의 특이성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인상 통보로 시작된 불평등한 협상의 결과물을 국회 비준을 받는 공식 문서로 남길 경우 최대 10년까지 구속되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반면 특별법으로 처리한다면 트럼프 행정부 일몰 이후 유연하게 대처할 여지가 남게 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협상 세부내역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정부가 국회 검증 없이 무책임하고 조급하게 거액의 해외투자를 결정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연 최대 200억 달러 규모의 대량의 현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데 대한 안전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상업적 합리성’ 조항을 한·미 양해각서 제1조에 넣었다”고 밝혔다. 투자 원리금 회수의 불확실성이 있는 사업은 애당초 착수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관세협상의 남은 불확실성이 걷힐 ‘팩트시트(설명자료)’ 완성 시점에 대해선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번 주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웅희 이동환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