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가 만들어낸 팬덤의 힘… 환승연애4, 또 터졌다

입력 2025-11-08 00:07
티빙에서 방영 중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4’의 포스터. 이 프로그램은 헤어진 연인과 함께 출연해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포맷으로 시청자의 몰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티빙 제공

매 시즌 인기를 끈 티빙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4’가 변함없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각양각색의 연애 리얼리티가 범람하는 가운데서도 확실한 콘셉트를 선점해 든든한 고정 팬덤을 보유한 까닭이다. 지난달 1일 첫 공개된 ‘환승연애4’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10월 5주차 TV-OTT 통합 비드라마 화제성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21년부터 4개 시즌으로 이어진 ‘환승연애’는 헤어진 연인과 함께 출연해 과거의 추억을 되짚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낯선 공간에서 재회한 전 연인(X)들의 감정을 점차 드러내는 동시에 새로운 인연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그려진다. X끼리 겪는 미묘한 심리 변화는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에 비춘 공감을 자아낸다.

‘환승연애’는 두 인물이 실제 감정을 바탕으로 관계를 쌓아가는 기존 연애 리얼리티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과거 함께한 시간과 감정을 담은 ‘이전 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러한 설정이 더 깊은 몰입감과 감정적 공감을 끌어내며, 프로그램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환승연애’ 시리즈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출연자의 서사 구조가 정교해지고, 시청자의 감정 개입이 강화되면서 팬덤이 형성됐다. 시청자들은 온라인에서 각 커플의 서사 분석이나 출연진 심리 해석을 나누는 식의 능동적인 시청 형태를 보인다. 단순히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자’로 변화한 것이다.

한 출연자가 다른 출연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있는 장면. 티빙 제공

2차 콘텐츠 시장에서도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환승연애’ 리액션 콘텐츠를 만드는 대표적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는 출연자들의 행동과 대사를 함께 지켜보며 시청자의 감정을 대리 표현한다. 설레는 장면에서 환호하고, 갈등 장면에서 분노하며, 이별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린다. 지난달 3일부터 공개된 ‘환승연애4’ 리액션 영상 다섯 편은 모두 조회수 100만회를 넘겼다. 영상마다 2000~3000개의 댓글이 달렸다.

시청자 반응이 중요해지면서 연애 리얼리티는 ‘양방향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시청자들이 실시간 댓글, 커뮤니티 토론, 유튜브 리액션 등으로 감상을 공유하면 제작진은 이를 다음 시즌 기획에 반영한다. 이렇게 충성도를 높인 시리즈의 팬층은 후속작 흥행의 안정적 기반이 된다.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앞다퉈 연애 리얼리티 포맷을 확장하는 이유다.

우후죽순 제작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에서 차별점을 만드는 것이 제작진의 중요한 과제다. 출연자들이 일정 기간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감정을 드러내는 관찰 예능 포맷은 유지하되, 출연자 구성과 관계 설정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출연자 전원이 연애 경험 없는 모태솔로로 설정되거나 패널의 가족이나 지인을 등장시키는 것도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시도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홍수 속에서 제작진은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출연자 구성과 관계 설정 등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왼쪽부터 TV조선 ‘잘 빠지는 연애’, KBS ‘누난 내게 여자야’ 방송 장면 일부. 각 방송사 제공

가령 지난 5일 첫 회가 나간 TV조선 ‘잘 빠지는 연애’는 ‘살도 빠지고 사랑에도 빠지는’ 콘셉트의 다이어트 연애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이 합숙 기간 함께 운동하고 사랑도 키워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연상녀와 연하남의 로맨스를 다룬 KBS ‘누난 내게 여자야’는 남성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 사랑에 주저하는 현실적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야구선수 출신의 출연자들을 꾸린 웨이브 예능 ‘우리 아직 쏠로’는 특정 직업군을 설정해 콘셉트를 세분화했다. tvN STORY ‘내 새끼의 연애’는 자녀의 연애를 부모가 지켜보는 관찰 포맷으로 화제를 모았다. 같은 채널의 ‘진짜 괜찮은 사람’은 이미주와 조세호 등 연예인들이 실제 친구를 소개하며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역할을 확장했다.

tvN STORY의 ‘내 새끼의 연애’ 방송 장면 일부. tvN STORY 제공

다양한 포맷 변화에도 연애 리얼리티의 흥행을 좌우하는 건 결국 ‘팬층을 만들어내는 서사’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미 브랜드화된 시즌제 연애 리얼리티는 하나의 지식재산(IP)으로서 고정 팬층이 꾸준히 시청하는 추세”라며 “시즌마다 새로운 출연진이 익숙한 서사를 반복하는 구조가 팬층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