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과 협의 없이 문화재 주변 건설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 적법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최고 높이 142m의 초고층 건물을 짓는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 다만 경관이 훼손되면서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 유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6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일부개정안 의결 무효 확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2023년 10월 문화재 보호 조례 19조 5항을 삭제했다. ‘문화재 특성과 입지여건 등으로 건설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인허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시 조례상 국가지정문화유산의 보존구역은 문화재 외곽 경계로부터 100m로 정하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는 지역에 대한 규제는 과도하다는 취지다.
당시 문화재청은 서울시가 협의 없이 조례를 개정해 상위법인 문화유산법을 위반했다고 반발했다. 조례가 공포되자 문체부는 소송을 제기했다. 조례 무효 소송은 대법원 단심 재판으로 이뤄진다.
대법원은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문화유산법 문언과 취지에 비춰 상위법령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초과하는 지역에서의 지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사항까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했다고 해석되지 않는다”며 “서울시의회가 당시 문화재청장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법령 우위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른바 ‘종묘 뷰 아파트’를 짓는 일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 종로변 건물은 기존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 건물은 71.9m에서 141.9m로 높이를 조정하는 내용의 세운4구역 재정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세운4구역은 2004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수익성 문제와 역사 경관 보존 논란 등으로 사업이 지연됐다.
서울시는 해당 지역이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있어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종묘 경관이 훼손돼 세계유산 가치 평가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유네스코 측도 지난 4월 서울시에 서한을 보내 유산영향평가를 하라고 요청했다.
서울시는 “조례 개정이 법령에 따른 절차를 충실히 이행한 적법한 조치임이 확인됐다”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이날 서울 성북구 장위13 재정비 촉진 구역에서 취재진과 만나 “오늘 판결이 잘 났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종묘를 더욱 돋보이게 할 대형 녹지축 형태의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종묘가 개발로 인해 세계유산의 지위를 상실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며 “문화유산위원회, 유네스코를 비롯한 관계 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한주 황인호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