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에 발목 잃은 해병, 의족 단 조종사로 다시 날다

입력 2025-11-07 01:28
예비역 해병대 대위 이주은씨가 지난 4일 서울 중구 제대부상군인 상담센터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지난달 18일 서울공항에서 다목적 경공격기 FA-50 조종석에 앉은 뒤 이주은(32)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 2018년 여름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지만, 1년만인 2019년 8월 경기 김포 한강하구의 한 소초에서 경계 작전을 수행 중 지뢰 폭발 사고를 당했다. 이렇게 왼쪽 발을 잃었다.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없어 군도 떠냐야 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이씨는 “좌절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누군가를 원망한 적은 없다”고 사고 당시를 돌아봤다. 어렸을 적부터 가진 꿈은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는 “하늘을 누비는 것도 멋지지만 그 하늘을 지키는 일이 더 큰 의미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을 떠나면서 하늘을 날기는커녕 제대로 걷기조차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2023년 우연히 ‘국민조종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래된 꿈이 다시 그를 불러냈다. 국민조종사는 일반 국민이 명예 조종사로 선발돼 공군 조종사와 전투기 비행훈련을 체험하는 제도다. 1774명이 지원한 국민조종사 선발에 이씨도 도전했다. 의족은 장애가 되지 못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끝내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 올렸다.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중력 적응훈련 등 고강도 과정도 모두 통과했다.

공군 제10기 국민조종사로 선발된 이씨가 지난달 18일 다목적 경공격기 FA-50 비행 훈련 체험 중 후방 조종석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공군 제공

그리고 지난달 18일 마침내 FA-50 조종석에 오른 것이다. 군에서 겪었던 수많은 훈련과 사고의 기억,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는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서자 지상의 건물이 장난감처럼 작게만 보였다”며 “영공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특히 고향인 강원 원주 하늘을 지나던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운동장, 오래전 내 발길이 닿았던 골목들까지 눈 아래 펼쳐졌다”며 “하늘과 땅이 하나로 이어진 풍경에 넋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 경험은 새로운 삶의 기회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이씨는 “모든 기다림이 의미를 되찾았다”며 “하늘이 오래전부터 내 꿈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착륙 지점으로 돌아가는데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좌절을 딛고 도전을 다시 시작했다”고 웃어 보였다.

이씨는 부상 제대군인을 위한 상담센터의 실장을 맡고 있다.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직접 제안해 설치한 것이다. 그는 “내가 다시 일어선 것처럼 그들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