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

입력 2025-11-07 00:40

“그날 밤,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을 봤다. 모두 울었고, 그건 기쁨이자 두려움이었다.” 한 이민자의 회고록에 나오는 말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리버티섬은 ‘이민자의 섬’이라 불리는 앨리스섬을 마주보고 있다. 1892년부터 60여년간 약 1200만명의 이민자들이 그 섬을 거쳐 미국 땅을 밟았다. 유럽의 빈곤과 전쟁, 박해를 피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왔지만, 건강검사와 신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희망의 섬은 동시에 눈물의 섬이었다. 20세기 이민의 문이 항구와 검역소였다면, 21세기의 문은 비자와 제도, 언어와 인종의 장벽이다. 그 문을 통과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뉴욕은 오래전부터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렸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하나로 녹아드는 용광로라는 뜻이다. 그러나 ‘녹인다’는 표현이 소수 문화의 정체성을 지운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대신 ‘샐러드 볼’, ‘모자이크’ 등으로 불리게 됐다. 뉴욕시의 외국 출생 이민자 비율은 점점 늘어 전체 인구의 38%에 이른다. 이들은 한데 섞이되 개성을 잃는 대신, 각자의 색으로 빛나며 새로운 뉴욕의 풍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취임한 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불법 입국자 단속과 난민 추방이 강화되면서 이민의 문은 다시 좁아졌다.

이런 시대에 조란 맘다니(34) 뉴욕 하원 의원이 뉴욕 시장에 당선됐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인도계 부모를 따라 뉴욕으로 온 맘다니는 2018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이민자다. 뉴욕 역사상 첫 무슬림 시장이자 반세기 만의 이민자 출신 시장이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을 겨냥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부터 뉴욕시는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다.” 이민자의 도시에서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 마이너였던 이민자가 시장 집무실에 들어선 도시가 됐다. 자유의 여신상이 바라보는 그 도시에서, 이제 그 자유를 가장 절실히 원했던 이들이 도시의 방향키를 잡게 됐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