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의 신앙 공동체인 ‘산소망 중도실명자 선교회’ 담임 진영채(39) 목사를 지난 5일 서울 광진구의 선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3층 높이의 선교회에는 ‘프로그램실’과 ‘녹음 도서관’ 등이 있다. 프로그램실과 부속 사무실에서는 라인 댄스 강습과 점자 교육 등이 진행된다. 읽고 싶은 책을 교회로 가지고 오면 봉사자들이 녹음 도서관에서 낭독해 녹음한 뒤 전달한다. 책 한 권 녹음하는데 보통 한 달이 꼬박 걸린다. 예외도 있다. 250m쯤 떨어져 있는 장로회신학대에 다니는 시각장애인 학생이 들고 오는 전공 교재는 봉사자 4명이 나서 일주일 만에 급히 녹음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이던 김재홍 목사가 1988년 설립한 선교회에 진 목사가 부임한 건 2023년 1월이었다. 젊은 목회자가 시각장애인 선교회에 부임한 이유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진 목사의 답이다.
“장로회신학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신약학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논문은 실로암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요한복음 9장을 중심으로 썼죠. 선교회 부임 직전에는 영락교회 장애인 부서인 사랑부 담당 목사로 사역했어요.”
진 목사와 장애와의 만남은 이뿐 아니었다. 외삼촌은 뇌수막염으로 인한 장애가 있었고 가족의 장애로 인해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된 경험도 있다. 더욱이 진 목사 본인이 대학 시절 희소암인 ‘거대세포종’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암은 허리뼈 5번을 감싸고 있었다. 결국 신학대학원 3학년이던 2017년 수술로 암이 달라붙은 뼈를 제거하고 4번과 엉치뼈를 티타늄 등으로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진 목사는 좋아하던 농구와 축구 등 운동을 할 수 없게 됐고 사람과 부딪히는 것마저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뼈와 뼈를 잇고 있는 금속이 부서지면 재수술까지 해야 하는 위태로운 일상도 시작됐다.
긴 시간 진 목사를 둘러싼 고통이 장애인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진 셈이다. 실제로 신학을 공부하던 중에도 학교에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여러 차례 ‘민원’을 하기도 했다.
진 목사는 “장애인들이 위험할 때 누를 수 있는 ‘장애인 호출 버튼’을 설치해 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지금 시각장애 교인들과 함께 지내게 된 건 결국 이런 관심의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선교회 예배는 주일이 아닌 월요일에 드린다. 여기에도 사정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혼자 선교회를 찾아오기 어렵다. 12개 지역의 지역장과 봉사자들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오는 게 보통이다. 다만 봉사자들이 주일에는 출석 교회 예배를 드리느라 승합차 운전이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예배 공간도 문제다. 바로 이웃한 광장교회(김만 목사)에서 예배를 드리는 선교회가 주일에 이 교회 본당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월요 예배’는 오히려 교인들에게는 유익하다. 함께 모여 웃고 떠들기도 하며 예배도 드릴 수 있어서다.
예배에는 120여명의 장애인과 같은 수의 봉사자가 참석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와 비장애 교인들로는 봉사자를 충원하기 어려워 여러 교회의 도움도 받고 있다. 예수길벗교회(이호훈 목사)와 광장교회, 영락교회(김운성 목사) 소망교회(김경진 목사)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가 한 주씩 차례대로 봉사자를 파견한다.
선교회가 중도실명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진 목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시각장애인 중 중도실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95%에 달합니다. 교인들에게 점자 교육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는 분들이 가장 많습니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죠. 교회도 국가도 중도실명자에게 관심을 더 가져야 합니다.” 앞서 88년 선교회를 설립한 김 목사도 한국은행에 다니던 중 베체트병으로 중도 실명했다.
진 목사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시각장애인 사역을 더욱 확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선교회 교인들이 평소 꽃꽂이도 배우고 향수 만들기나 라인 댄스, 점자 배우기 등 다양한 활동도 하는데 늘 강사가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면 이런 부분에도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더 많은 분을 섬길 수 있게 되는 셈이죠. 내년에는 협동조합을 출범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동네에 있는 장애인들도 돌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
이제 30대 후반인 진 목사에게 목회는 ‘약한 사람을 품는 일’이었다. 진 목사는 “제게 목회란 덜 약한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을 품는 일 같다”면서 “약한 분들과 발걸음을 맞춰 가는 여정이 결국 목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진 목사는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월요일에 교인들이 예배에 오시면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점심 식사가 늘 고민이에요. 제가 부임한 뒤 함께 식사하는데 늘 식비 부담이 큽니다. 우리 교인들의 점심에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우리 공동체가 더욱 풍성해질 것 같아요.”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