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다른 사람이 대신 꿔주는 꿈

입력 2025-11-07 00:32

큰언니의 태몽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그 꿈에는 호랑이도, 구렁이도 없었다. 언니는 치마폭에 꽃상추를 한가득 담고 있었다고 했다. 연하고 부드러운 꽃상추가 새벽 호숫가의 물결처럼 은은하게 빛났다고 했다. 태몽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나 탐스러운 과일도 아니고 상추라니. 그 이야기가 조금 시시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남들이 들으면 뭐 그런 것을 부러워하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 나는 태몽이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어머니께 여러 번 여쭈었지만, 꾸지 않으셨다고 했다. 여덟 남매를 낳으셨으니 헷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워낙 기억력이 좋은 분이었다. 정말 없었던 일인 것 같았다. 그 말이 어쩐지 서운하게 들렸다. 태몽은 단순한 꿈이 아니다. 누군가의 무의식이 대신 꿔주는 은총, 타인의 상상력이 내 서사를 미리 써 내려가는 일이다. 그 시작에는 아직 세상이 해석하지 못한 어떤 순결한 기원이 숨어 있는 듯하다.

이따금 떠올려본다. 언니가 보드라운 가제 손수건에 싸서 보여줬던 조카의 탯줄을. 그것은 마치 바짝 마른 고추꼭지 같았다. 그리고 언니의 태몽 속에서 쪼글쪼글한 꽃상추를 이불처럼 덮고 잠든 아기를 상상해본다. 탯줄은 단지 탄생을 증명하는 흔적만은 아닐 것이다. 끊어졌지만 여전히 이어진, 배냇적의 기억이자 무의식의 끈이다. 태몽은 그 끈을 따라 타인의 무의식으로 흘러드는 걸까. 타인이 나의 탄생을 미리 예견한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얼마 전 첫 조카가 출산을 했다. 막내 조카가 대신 태몽을 꿨다고 했다. 털이 희고 커다란 고양이가 첫 조카의 집으로 들어왔더란다. 마치 제 집인 양. 태몽은 그렇게 세대를 건너 흘러간다. 하나의 꿈이 또 다른 생의 무의식 속으로 이어지며, 우리는 서로의 기억을 조금씩 물려받는다. 그 끈이야말로, 보이지 않지만 오래 전해지는 ‘기억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