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자가 4~5일 던진 4조7000억원 매도 폭탄에 코스피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코스피가 올해 4월 연저점 대비 70% 넘게 오르면서 가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전날 미국 팔란티어의 주가 급락으로 극대화한 ‘인공지능(AI) 버블’ 우려가 조정의 빌미를 줬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코스피가 추가 조정을 받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상승 흐름이 훼손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기업 이익 개선과 정부의 자본시장 제도 개선 등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외국인은 2조5000억원어치 코스피 주식을 내다 팔았다. 외국인은 전날에도 2조2000억원어치를 내다 팔아 이례적 수준의 차익 실현에 나선 상황이다. 외국인은 9~10월 코스피 주식을 12조원 규모 순매수하며 코스피 역대 최고치 경신의 주역이었으나 4일부터는 그간 뿌린 씨앗을 수확하기 바쁜 모습이다. 이 영향에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85% 내린 4004.42에 마감했다.
외국인은 최근 2거래일 코스피 상승을 이끈 주도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각각 2조7000억원, 7500억원 순매도했다. 또 두산에너빌리티(-1830억원) LG씨엔에스(-1800억원) HD현대일렉트릭(-1400억원) 등 최근 급등한 종목을 대거 팔아치우며 차익을 실현했다.
전날 뉴욕증시에서 AI 버블 우려가 부각되며 기술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급락한 점이 외국인 투심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 4일(현지시간) 팔란티어는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호실적을 냈지만 주가는 7.94% 폭락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마이클 버리가 대표적 AI 기업인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AI 버블 우려를 심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월가 거물들을 중심으로 증시 과열에 대한 언급도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테드 픽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는 홍콩통화청이 주최한 ‘글로벌 금융 리더 투자 서밋’에서 “거시경제 충격이 아닌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 속에서도 10~15% 정도의 조정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행사에서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역시 향후 1~2년 안에 10~20%의 주가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증시 낙폭에 비하면 증권가는 침착한 분위기다. 단기에 급등한 지수와 강세를 보이는 달러 상황을 고려하면 조정은 올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언제든지 조정을 크게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당분간 추가 조정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 대세 상승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의 실적 개선 기대감이 여전하고 정부의 추가 상법 개정안이 이달 국회에서 구체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스피 상승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코스피의 단기 급등에 미처 주식을 사지 못했던 외국인투자자의 신규 유입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주식을 급히 내던지는 ‘패닉 셀’은 지양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코스피 상승의 배경인 기업 이익 증가세와 정부의 자본시장 제도 개선 노력 등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광수 장은현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