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AI 드라이브’에 공공기관 보여주기식 사업 우려

입력 2025-11-05 18:37 수정 2025-11-05 18:40

정부가 내년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인공지능(AI) 활용’ 가점을 신설하면서 각 기관이 앞다퉈 AI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인프라 지원 없이 지표만 만든 탓에 실효성 없는 외주사업이 늘고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실시되는 ‘2025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에 AI 활용 등 혁신 가점(1.5점)이 신설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2025 공공기관 AI 대전환 워크숍’에서 “AI 혁신 노력을 평가에 반영하기 위해 경영평가 가점을 신설했다”며 “내년 예산에도 관련 사업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각 기관은 AI 과제 발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공공기관은 AI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 인력이 없고 인프라도 부족해 당장 성과를 내려면 외주 업체에 의존해야 한다. 예컨대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은 현재 개방 중인 국토위성영상에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도입하기 위해 6600만원 규모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일반 개인도 필요한 위성영상을 좀 더 쉽게 찾아 이용하게 한다는 취지다.

기관마다 업무 특성이 달라 AI 활용 수준을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대민 서비스가 주 업무인 기관은 AI를 통한 실시간 응대 등 활용도가 높은 반면 국가기반산업 관련 기관은 안전성이 우선이라 검증되지 않은 AI 시스템을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며 “공통지표로 평가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AI가 새로운 유행어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한때 챗봇, 메타버스 등이 유행하면서 관련 사업을 벌인 곳이 많았지만 실제 이용률은 낮고 국민 체감도 거의 없었다”며 “이번에도 ‘보여주기식’ 사업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기관 간 격차도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관 규모와 인력 수준에 따라 AI 사업 여력이 크게 차이 난다”고 말했다. 일례로 한국도로공사는 AI를 통해 도로·교량 파손 상태와 야생동물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등 실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다수 기관은 챗봇 생성 및 행정 절차 단순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우려에 과거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한국국토정보공사가 2014년 잠실 땅꺼짐 사고 이후 800억원을 들여 추진한 ‘지하공간통합지도’ 사업이 대표적이다. 완성된 지도는 지반침하 이력 등 핵심 데이터가 빠지고 갱신도 이뤄지지 않아 예산 낭비 사례로 꾸준히 지적받았다.

우윤석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는 “AI 인력과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인프라가 공공기관까지 닿지 않는 상황에서 ‘혁신’ 지표 이름만 바꾼 수준”이라며 “관련 성과 보고 행사에서 한 공기업은 8억원을 들여 자체 AI를 개발한다며 자랑했는데 결국 잃어버린 비밀번호 찾기 같은 단순 기능을 구현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누리 김윤 김혜지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