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한 적 없이 교회 활동만 하시나요… “모태신앙인, 복음 안에서 다시 태어나라”

입력 2025-11-06 03:00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김태경(가명·34)씨는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모태신앙’이지만 올해 초 교회를 떠났다. 권사인 어머니 영향으로 교회 청년부 활동과 찬양팀 봉사에 빠져 살았지만 취직 후 타지로 떠나면서 교회와 멀어졌고 일부 교회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적 언행과 정치화된 분위기에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돌아보면 교회 생활에 열심은 있었지만 내 안에 확신이 없었다”며 “사람들 모습에 흔들릴 정도였다면 내 안에 진짜 믿음이 없었던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모태신앙을 통해 교회에 처음 발을 들인 이들이 교회 내 주류가 되고 있다. 가족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회 문화를 습득할 수 있고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모태신앙은 축복이지만 유전되듯 이어지는 종교생활이 복음의 본질을 가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난 5월 발표한 ‘한국교회의 가족 종교화’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출석 교인 조사에서 기독청소년 58%, 20·30대 54%가 모태신앙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같은 조사에서 ‘타율적 또는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61%)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모태신앙의 경우 의외로 개인적 회심을 경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회심 경험이 없는 모태신앙 교인도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현장 목회자들도 응답하고 있다. 차성진 모두교회 목사는 2022년부터 ‘모태신앙 다시 시작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신앙의 본질을 재점검하고 있다. 차 목사는 “믿음 없이도 교회 생활은 충분히 가능하다. 사람을 만나고 악기를 연주하며 감정이 고조될 때 눈물과 행복이 밀려오지만 그런 감정은 복음이 없어도 가능한 심리적 경험”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의 교회는 교제와 봉사만으로 활발한 활동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활동이 복음을 대체하는 착시가 생겼다”며 “감정과 문화에 익숙해진 모태신앙 세대가 신앙의 출발점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손성찬 이음숲교회 목사는 “모태신앙의 문제는 자녀보다 부모에게 있다”고 지목한다. 손 목사의 저서 ‘묻다 믿다 하다’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부모가 율법적 신앙을 전한 결과, 교회 문화엔 익숙하지만 복음의 이유를 모르는 세대가 생겼다”고 분석한다.

그는 "유아세례는 부모가 신앙으로 양육하겠다고 서약하는 예식이지만 그 약속이 실제 생활에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며 "모태신앙 자녀를 회심했다고 전제하지 말고, 오히려 회심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모태신앙의 경우 유아세례를 받고 13세부터 입교를 하는데 이 규정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복음을 이해하고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때 교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제110회 정기총회에서 유아세례 교인 입교 연령을 13세에서 7세로 낮추려다 부결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총대들은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기엔 너무 이르다"며 반대했다. 단순한 행정 연령 조정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 이해와 회심에 대한 교회의 깊은 자기 성찰이 반영된 결정이라는 평가다.

서울 나눔교회(조영민 목사)는 유아세례를 '가정 신앙교육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세례 전 부모에게 7편의 설교 영상을 시청하게 하고 간증문과 기도문을 직접 작성하게 한다. 이후 소그룹 나눔을 이어간다. 조영민 목사는 "신앙은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라 가정의 언어와 행동 속에서 이어질 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며 "믿음은 상속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박찬호 백석대 신학과 교수는 "모태신앙 청소년·청년이 교회를 가장 많이 떠나는 시기가 성인기 초입"이라며 "부모가 아무리 애써도 결국 자녀가 '자기 하나님'을 만나야 진짜 믿음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만남이 일어나도록 부모와 교회가 돕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