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고등학교 때 늘 오전 시간이면 졸던 기억을 나눴다.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오전 7시 전후로 등교했던 거 같다. 당시에는 모든 학생이 참여해야 하는 아침 자율학습이 있었다. 오전이면 비몽사몽이었고 배도 고파 쉬는 시간이면 일부나마 점심 도시락을 까먹었다. 주말이면 밀린 잠을 보충했고 어김없이 월요일에는 생체리듬이 깨져 있었다.
얼마 전 그 기억이 떠올라 고교 교사인 친구에게 요즘 학생들은 언제 등교하는지 물었다. 친구의 학교는 1교시가 8시20분 시작한다. 8시10분 조회를 하기에 그때가 지각의 기준이라고 했다. 좀 더 이른 시간에 아침 자율학습이 있지만 말 그대로 신청하는 학생만 하는 ‘자율’이라고 한다. 등교 시간이 조금은 늦춰졌지만 그래도 아침에 조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다.
아침에 왜 졸렸을까. 단순히 생각하면 ‘잠이 부족해서’라는 이유가 쉽게 떠오른다. 책을 뒤적이다 다른 이유를 찾았다. 그 시간은 졸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하루 24시간 주기로 반복하는 ‘일주기 또는 생체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이 리듬을 총지휘하는 생체시계는 우리 뇌 안에 있다.
생체리듬은 개인차도 있지만 크게 보면 나이에 따라 변한다. 어린아이일수록 일반적으로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뚜렷하게 아침형 인간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녁형 인간으로 변한다. 10대는 극단적인 저녁형 인간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20~22세면 저녁형 인간의 정점에 이른 뒤 다시 서서히 아침형 인간이 돼 간다. 한창때를 지나 나이 들수록 아침잠이 없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침에는 쌩쌩한 초등학생의 등교 시간은 당기고 아침에는 맥을 못 추는 고교의 등교 시간은 늦추는 것이 생체리듬에는 맞는다. 하지만 사회적 시계는 용납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설정한다. 등교 시간을 늦추면서 일어난 학생들의 변화는 생체리듬에 어긋난 생활을 강요받는 해악을 반증한다. 2016년 미국 시애틀의 한 고교는 1교시 수업을 전년보다 1시간 늦춰 8시45분에 시작하는 용기를 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수면시간은 34분 늘었고 지각과 결석은 줄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됐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일부 고교에서는 아예 학생들이 등교 시간대를 선택하도록 한다. 핵심 과목의 수업은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사이에 몰아넣고, 나머지 수업은 오전이든 오후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수업 시작 시간은 누가 정한 것일까. 속 시원한 답을 얻기는 힘들다. 분명한 것은 아침형 인간이 돼버린 어른들이 정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은 아마도 근대화, 산업화 시대에 누군가를 부려먹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에 따르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아니라 기억력이 좋은 새가 먹이를 더 쉽게 잡고 생존에 유리하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일찍 일어나는 새는 피곤할 뿐’이다.
곧 수능일이 다가온다. 수능 1교시는 8시40분에 시작한다. 입실 완료 시간은 8시10분이다. 수능 컨디션 관리 조언의 첫 번째는 수능 당일 1교시 시작에 맞춰 늦어도 6시30분에는 기상하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저녁형 인간인 10대 학생들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어른들은 아예 시험 시작 시간을 늦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일정과 계획에 너무나 번거로운 일들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험 시간을 늦춘다면 아마도 평균 점수가 높아질 수도 있을 텐데. 우리의 본능에 반하는 사회적인 억압이 어디 이뿐일까.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