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술자가 시계탑 시계가 고장 나 열심히 고쳤다고 합니다. 그는 부품을 하나씩 손질하고 고장 난 것은 교체했습니다. 시곗바늘의 모양과 색깔도 새롭게 바꾸고 시계탑 전체를 반짝이게 닦았습니다. 모든 작업을 마친 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내려왔을 때 관리인이 물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맞습니까.”
그러자 기술자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계가 정말 멋지고 깨끗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허구처럼 들리지만 어쩐지 우리 마음을 찌릅니다. 시계를 고친 이유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였을 텐데 정작 그 핵심은 놓친 것입니다. 겉모습과 장식에는 힘을 쏟았지만 본래의 목적은 잊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면 웃어넘길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를 이 땅에 두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시계가 시간을 알리듯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세상에 복음을 알리고자 하십니다. 교회와 성도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고 복음대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 단순하고 분명한 목적이 흐려질 때 교회는 길을 잃고 신앙은 껍데기만 남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게 좋은 낚싯대나 그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배는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배를 가지고 있어도 그물을 내리지 않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낚싯대와 그물, 장비와 기술에는 신경 쓰면서 정작 바다에 그물을 내리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인데 말입니다.
오늘날 선교를 말하지 않는 교회는 없습니다. 선교 비전을 선포하고 선교 헌금을 모으고 선교의 꿈을 나누는 일은 익숙합니다. 그러나 진짜 선교는 말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잃어버린 영혼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아니면 내 곁에 있는 사람,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고 믿은 이를 양육해 제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선교의 길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본질보다 부수적인 것에 쏠리면 힘과 자원이 엉뚱한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15~16)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고전 10:23)
우리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돼 있습니다.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본질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진짜 선교가 필요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충성된 일꾼이라 해도 자녀에게 믿음이 없다면 다시 복음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진짜 선교가 필요합니다. 크리스천 기업이든 비신앙적인 환경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각자의 교회에서도 우리는 선교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위한 중보기도 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 선교사를 후원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직접 선교지를 찾아가 봉사하며 복음의 씨를 뿌리고 물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환경에 따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물을 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는 진짜로 선교합시다. 진짜를 붙듭시다. 비행기가 활주로만 오가면 더 이상 비행기가 아닙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가 복음을 실천하지 않으면 신앙은 껍데기로 남습니다.
무늬만 교회, 형식만 신앙의 이름으로 남지 맙시다. 복음의 본질에 응답하며 선교의 부르심에 삶으로 대답합시다. 선교는 목회자나 선교사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환경과 직분을 넘어 지금 있는 자리에서 복음의 통로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는 복음의 사명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앙의 진짜이며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부르심입니다.
(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