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캄보디아 한국인 범죄·피해 소식은 여러모로 참담하다. 세계적인 관광지 앙코르와트가 있는 평화로운 나라로만 인식됐던 캄보디아가 알고 보니 로맨스 스캠, 리딩방 사기, 보이스피싱 등 각종 국제 범죄의 거점이 되고 있었다. ‘웬치’라 불리는 범죄단지가 수도 프놈펜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존재했고, 그곳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범죄가 자행됐다. 심지어 화장장과 고문실까지 갖춘 무법지대였다 하니 공권력의 손이 닿지 않는 그 현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최근 경찰에 검거된 한 조직의 실태는 범죄라기보다 기업형 사기에 가까웠다. 그들은 CS지원팀, 로맨스 스캠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 리딩방팀, 공무원 사칭 노쇼사기팀 등 5개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직원들은 2인 1실로 합숙하며 실장·팀장·팀원 체계를 갖췄고, 일반 회사처럼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승진시키는 인사 시스템까지 운영했다고 한다. 하나의 거대한 범죄 산업이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 한참 늦었다는 점이다. 캄보디아에서 대학생이 현지 범죄조직에 의해 사망한 사건은 이미 지난 8월 초에 발생했다. 올들어 8월까지 접수된 캄보디아발 한국인 납치 신고는 무려 330건이나 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10~20건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220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구조를 요청한 국민을 주캄보디아대사관이 “업무시간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돌려보냈다는 소식은 더 큰 공분을 샀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캄보디아 범죄에 연루된 이들 중 상당수가 지방 출신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캄보디아에서 숨진 대학생 역시 경북 출신으로, 충남의 한 지방대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그는 대학 선배의 권유로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출국했다가 한 달 만에 변을 당했다. 지난달 국내로 압송된 캄보디아 내 범죄 가담 한국인 64명 중 45명이 충남경찰청 관할에 구금됐다. 또 최근 검거된 114명 규모의 사기조직 가운데 77%가 청년층이었다.
물론 단숨에 큰돈을 벌고자 한 욕심으로 범죄 유혹에 빠진 경우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심각한 청년 취업난이다. 특히 지방 청년들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스펙’이 없어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학력·경력 무관, 고수입 보장’ 같은 광고 문구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숨진 대학생의 이웃이 “성인이 된 뒤 택배 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아이였다”고 증언한 것도 그 단면을 보여준다.
실제 통계도 이 같은 현실을 뒷받침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20대 고용률은 60.5%로 1년 전보다 1.2% 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청년실업률은 5.0%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21만9000명이나 줄었다. 특히 지방에서는 양질의 일자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나금융연구소의 ‘기업 본사의 수도권 집중 현상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79곳이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부산, 대구, 광주 같은 광역시조차 단 한 곳도 없다. 경제력뿐 아니라 일자리, 교육, 문화, 그리고 이제는 범죄 피해의 위험까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방 청년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하고 인턴십과 해외연수 등 경력 개발 기회를 늘려야 한다. 동시에 허위 채용 광고를 단속하고, 취업 사기 예방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모규엽 사회2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