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40장(통43)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갈라디아서 4장 6절
말씀 :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여자를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관계의 가장 근원적인 형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한 사람이 아기로 태어나 생존을 위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뿐 아니라, 성장기와 성년기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존재가 바로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신앙을 갖게 됐을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가르침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은 그분의 나쁜 경험을 하나님께 투사해 생긴 문제일 뿐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우리가 모든 죄와 심판,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진리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점이야말로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 짓는 가장 독특한 교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단순히 신과 숭배자의 관계로 보지 않고, 부모와 자녀처럼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로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깨진 모든 인간관계 회복의 기초가 되며, 우리 안에 있는 관계 맺음의 갈망이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읽은 갈라디아서나 로마서 8장에 나온 ‘아들’이라는 표현은 남녀 구분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입양된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가 모두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양되어 양자가 됐다는 이 말씀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됐다는, 정말 은혜로운 복음의 교리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격식을 차려 ‘아버님’이라 부르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가 아버지 품에 파고들며 ‘아빠’ 하고 부르짖는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완전히 채워주신다는 놀라운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를 아버지께로 이끄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감동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며 그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하십니다.(롬 8:14~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처럼 두려움 속에서 종교 생활을 하는 율법주의자가 아닙니다.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며,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도 이 지극히 큰 복을 충만히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주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여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의 삶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한상화 목사 (아신대 조직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