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선율 ‘예수 사랑하심을’ 동아시아 선교 때 공감 넓혀

입력 2025-11-06 03:33
펜윅(가운데) 선교사가 1890년대 말 성경공부를 위해 모인 성도들과 원산 지역에서 함께한 장면. 한국찬송가개발원 제공

“저를 사랑하시는 천부 아들 예수 씨. 제 대신 죽으셨고 다시 사사 이처럼. 더욱 사랑하심(x3) 구주님 예수 씨.”

펜윅 선교사의 ‘복음찬미’ 42장에 수록된 ‘저를 사랑하심’ 악보. 한국찬송가개발원 제공

현행 찬송가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Jesus Loves Me, This I Know)’의 옛 가사 번역이다. ‘예수 씨’나 ‘저’와 같은 이색적인 표현이 나온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먼저 불린 찬송가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이 찬송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에 복음의 본질을 담고 있는 가사가 결합돼 애창되고 있다.

이 찬송의 원래 작사자는 미국의 작가 안나 B 워너(1827~1915)이다. 그는 1860년 언니 수잔과 함께 쓴 소설 ‘말하고 확증하다(Say and Seal)’에서 병든 소년을 위로하는 장면에 이 시를 삽입했다. 소설에서 주일학교 교사인 존 린덴이 죽어가는 소년 조니를 품에 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은 많은 독자의 마음을 울렸다. 이후 찬송 작곡가 윌리엄 B 브래드버리(1816~1868)가 후렴(Yes, Jesus loves me)을 덧붙이고 작곡해 1862년 ‘주일학교 찬송의 황금 선율’에 수록하면서 오늘날의 찬송가 형태로 완성됐다.

말콤 C 펜윅 선교사가 내한 후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차림으로 기념 촬영한 모습. 한국찬송가개발원 제공

한국에서는 1890년경 캐나다 출신의 침례교 선교사 말콤 C 펜윅(1863~1935)이 이 찬송을 최초로 우리말 번역했다. 그의 번역은 1899년에 출판된 ‘복음찬미’에 수록됐는데 후렴 가사에 “예수 씨 날 사랑하오(x3), 성경으로 내가 아오”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이후 1958년판 ‘복음찬미’ 42장에서는 “더욱 사랑하심(x3), 구주님 예수 씨”로 수정됐다.

이 찬송가가 한국에서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데에는 멜로디의 음악적 특성도 한몫했다. 5음 음계로 구성된 이 곡은 한국 전통 민요와 유사한 구조를 지녀, 음악적 배경이 없는 사람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찬송가의 곡명(Tune name)이 ‘CHINA’(차이나)로 표기돼 있다는 사실이다. 찬송가의 곡명은 제목과 다른 개념인데, 작곡자의 이름, 관련된 지명, 역사적 사건 등을 참고로 작곡자 자신이나 후세 사람들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붙여지는 멜로디의 고유 이름이다.

‘차이나’라는 곡명으로 미루어 보아 이 찬송은 19세기 중국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널리 애창되었으며, 이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친숙한 멜로디였음을 보여준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할 때 문화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익숙한 선율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 곡은 초기 선교 전략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찬송이 한국에 전해진 시점에 대한 중요한 구전 증언도 있다. 한국인 최초의 신자 백홍준(1848~1893)의 딸, 백관성 권사는 생전에 “아버지가 만주에서 돌아온 후, 중국어로 된 찬송을 즐겨 불렀는데, 그 노래가 나중에 한국 찬송가에 실린 ‘예수 사랑하심을’이었다”고 증언했다. 백홍준은 아마도 중국어로 “예수 아이 워 완 뿌 추오” 식으로 찬송을 불렀으리라 생각된다. 이 찬송이 공식 출판 이전부터 이미 백홍준과 초기 신앙 공동체 사이에서 중국어 형태로 구전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증언이다.

이 찬송가의 영향력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확장됐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안병한 장로는 1934년 ‘방언찬미가(The Dialect Hymnal)’를 출판하며, 이 찬송의 가사를 한국어 발음으로 음역(音譯)해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함께 수록했다. 예를 들어 영어 가사는 “Jesus loves me, this I know”를 “찌서스 러브스 미 디쓰 아이 노우”로, 중국어는 “예수 아이 워 완 뿌 추오(耶蘇愛我万不錯)”로 표기했다. 일본어 가사는 “슈 와레오 아이스(主われをあいす)로 시작하며, 일제가 일본어를 ‘국어’로 강요하던 시절에 ‘국어(國語)’라는 표기를 사용한 것은 시대적 아픔을 반영하고 있다.

이 찬송은 1894년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가 발행한 ‘찬양가’ 21장에도 수록돼 있는데, 가사는 “예수 나를 사랑하오. 성경에 말씀일세. 어린아이 임자요 예수가 피로 샀네. 예수 날 사랑하오(x3) 성경 말씀일세”다. 한국어에 비교적 능통했던 애니 베어드(안애리·1864~1916) 선교사는 이 가사를 재번역해 1898년의 ‘찬셩시’ 8장에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네. 어린거시 약하나 예수 권세 만토다. 날 사랑하심(x3), 성경에 쓰셨네”라는 가사를 실었다.

이것은 다시 1946년 개신교단이 연합해 만든 ‘(합동)찬송가’ 411장에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x3), 성경에 써있네”로 바뀌었다. 이처럼 가사는 시대적 상황과 문화를 반영하며 조금씩 변화했지만,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라는 핵심 메시지는 변함없이 한국 성도들의 신앙 고백이 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