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펼쳐진 은행나무 숲… 황금빛 카펫 위를 걸어요

입력 2025-11-06 02:11
전남 담양군 ‘덕경수목농원’의 은행나무 숲. 도로 양쪽으로 황금빛 옷을 입은 키 큰 은행나무가 도열해 가을 정취를 자아낸다.

단풍의 계절, 그 가운데 노랗게 가을을 물들이는 나무는 은행이다. 황금빛 카펫을 펼치는 곳으로 찾아간다.

전남 담양에는 덜 알려진 은행나무숲이 있다. 사유지인 ‘덕경수목농원’ 안에 있다. 단풍나무 등이 울긋불긋한 수목원 가운데 직선의 비포장도로가 뻗어가고 양쪽으로 황금색 옷을 입은 키 큰 은행나무가 도열해 있다. 700m 거리의 길은 양쪽으로 150그루 이상의 나무로 이뤄져 있다.

100만㎡(약 30만평) 규모 숲의 소유주는 김모 대표다. 광주광역시에서 안과를 운영하던 한 의사 집안 소유였다. 대전에 종합병원을 짓는 과정에서 부도가 나면서 부지는 한 건설회사로 넘어갔고 이 회사는 은행나무 등을 심어 조경했다. 이후 10년 전부터 김 대표가 인접한 종중 땅도 모아 조림하면서 수목원으로 가꿔나갔다. 은행나무길 옆엔 단풍·편백·벚나무·밤나무·전나무 등 구역별로 다양한 수종이 자리하고 있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 은행나무 숲.

수도권에서는 에버랜드 인근 대자연 속에 반세기 넘게 숨겨져 왔던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숲이 있다. 약 14만5000㎡(4.4만 평) 부지에 은행나무만 약 3만 그루에 달하며, 밤나무·참나무·메타세쿼이아 등 다양한 식물 자원들과 함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은 1970년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황폐한 국토를 푸르게 가꾸고 국민의 식량 자급을 위해 국토개발의 시범장으로 경제조림단지를 구상한 게 출발점이었다. 당시 용인 지역과 함께 경주 보문단지, 추풍령 고개 근처, 문경새재 일대 등이 후보 지역에 올랐으나 척박해 조림에는 가장 적합하지 못했지만 국민이 찾아오기 쉬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용인 일대가 최종 후보지로 낙점됐다.

이후 에버랜드 일대에 약 400만평 부지를 확보해 식량증산과 소득효과가 큰 유실수(有實樹)와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수(長期樹)를 집중적으로 심었고, 양돈사업을 통해 나오는 퇴비로 메마른 토질을 개량해 나갔다. 특히 밤나무를 주종으로 한 유실수 단지에는 호두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등을 심었다. 밤, 호두, 은행 등은 영양가가 높아 곡수(穀樹)로도 불렸다. 당시 쌀이 평당 137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에 비해 은행은 537원, 호두 498원, 살구 250원, 밤 245원으로 수익률도 높았다.

시련도 있었다. 1979년 초겨울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기록적인 한파가 용인 일대에 찾아와 밤, 복숭아, 호두 등 많은 과실수가 동해(凍害)를 입어 고사했다. 이듬해 봄 수만 그루의 고사목을 벌채하고 고사율이 가장 적으며 강인한 생존력을 보였던 은행나무를 더 심었다. 밤나무 고사 지역에 은행나무 3만주를 집중 식재해 현재의 숲을 형성하게 됐다.

숲은 외부에 거의 공개하지 않고 관리한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오밀조밀 뿌리 내린 은행나무는 햇빛을 더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나간 모습이다. 늦가을에 맞춰 숲 전체는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폭신한 황금빛 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숲에는 약 5㎞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가 마련돼 있어 은행나무숲길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다.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의자와 명상장, 그리고 은행나무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도 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

올해 봄 산불로 피해를 본 경북 안동에도 유명한 은행나무가 있다.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 운동장 한편에 700년 동안 뿌리를 내린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1987년 임하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 위기를 맞았다. ‘나무를 살려 달라’는 주민들의 간청에 공사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나무를 살리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무게 500t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목을 이식(移植)한 사례가 없었다.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이식이 아니라 나무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수몰을 피할 수 있는 높이까지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상식(上植)으로 정해졌다. 나무를 철골 위로 올려놓는 데만 2년 넘게 걸렸고, 그 뒤 80여 일 동안은 하루 30~50㎝씩 나무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그렇게 15m 높이까지 수직 이동시켰고 뿌리 아래에 흙을 채우면서 인공 산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다. 공사에 1990년부터 4년간 26억여 원이 투입됐다. 수직으로 들어 올린 ‘상식’ 방식으로 옮겨진 세계 최대의 나무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25주 가운데 ‘가장 비싼 은행나무’라는 별칭도 얻었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