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건기식, 세계까지 씹어먹다

입력 2025-11-06 02:16
게티이미지뱅크

K건강기능식품(건기식)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다이소·편의점·올리브영 등 유통 채널이 확대되고 외국인 관광객이 새로운 수요층으로 떠오르면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성장한 업계는 내수 시장이 정체를 겪자 글로벌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K뷰티·K푸드로 쌓은 신뢰가 웰니스 산업으로 확장되며 건기식이 새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모습이다.

K뷰티 열기 이어 ‘K웰니스’

K 건강기능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소비와 수출액이 모두 증가세다. 서울 성동구 ‘올리브영N 성수’ 매장의 웰니스에딧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하고 있다. 올리브영 제공

5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외국인의 건기식 소비는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무토 사야(22)씨는 귀국길에 올리브영에서 비타민을 구매했다. 그는 “비타민 C와 D가 함께 들어있는데 일본보다 훨씬 저렴했다”며 “한국은 스킨케어뿐 아니라 건강식품도 다양하고 믿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올해 1~9월 이너뷰티 카테고리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늘었다. 서울역 인근 매장의 한 직원은 “홍삼은 꾸준히 수요가 있고 최근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슬림 유산균·가르니시아, 미백 관련 제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GS25 역시 공항·인사동 등 외국인 밀집도가 높은 점포의 하루 평균 건기식 매출이 일반 매장 대비 37% 높다. GS25는 최근 건기식 30여종 누적 판매량이 100만개를 돌파했다. 5000원 이하 소용량 건기식 상품 판매를 시작한 지 약 석 달 만이다. GS25 관계자는 “‘한국 여행 기념품’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틱톡 등 소셜 미디어에서는 K웰니스 관련 영상이 수만 개의 ‘좋아요’를 얻으며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외국인 인플루언서들이 “한국 여성들이 치킨과 소주를 즐기면서도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 “K팝 아이돌이 실제로 복용하는 영양제”라며 다이어트 보충제·홍삼·유산균 등의 제품을 소개하며 K뷰티를 잇는 K건기식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프리미엄 선물로도 주목받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의 웰니스·건강 상품군 외국인 매출은 올해 전년 대비 약 20% 늘었다. 신세계백화점도 최근 3개월간 외국인 건기식 매출이 26.5%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경옥채’ 등 한방 건강식 브랜드에는 한 번에 대량 구매를 하거나 식습관과 건강 상태에 맞춘 제품 제작을 요청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수요를 겨냥한 ‘기념품화’ 전략도 눈에 띈다. KGC 인삼공사 대표 브랜드 ‘정관장’은 지난 9월 서울시와 협업한 상품을 출시했다. 남산타워·북촌한옥마을 등 서울의 대표 명소를 담은 디자인으로 관광객을 공략했다.

다각화하는 K건기식

이너뷰티 브랜드 '낫띵베럴'의 건강기능식품 '탱글리'가 진열된 모습. 낫띵베럴 제공

새로운 제형의 제품, 부담 없는 가격대, 캐릭터 컬래버레이션(협업) 등이 인기 요인으로 분석된다. 업계는 상품 구성 다각화로 시장을 파고든다. CJ올리브영은 지난해 말 자체 브랜드 ‘탄탄’을 론칭해 젤리·파우더 등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올리브영은 다양한 제형과 중소 브랜드의 제품을 꾸준히 발굴하며 큐레이션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올리브영N 성수’ 매장은 한 개 층 전체를 웰니스존으로 구성했다.

정관장은 히트 상품 ‘에브리타임’을 배, 한라봉, 베리 등 과일맛으로 출시했다. 동화약품 ‘마그랩’은 주요 제품을 천하장사 캐릭터와 컬래버한 상품을 기획해 소장 욕구를 높였다. 유산균 개발을 이끌고 있는 hy는 올해 초 기존 제품 ‘윌’에 정제와 액상의 이중제형을 적용한 위 보호 건강기능식품 ‘윌 작약’을 출시해 호응을 얻고 있다. 농심은 2020년 론칭한 ‘라이필’ 브랜드를 통해 유산균, 콜라겐, 오메가3 등을 판매 중이다.

백화점·면세점업계도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신세계면세점은 지난 7월 서울 중구 명동점 11층을 전면 재단장하면서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에 건강기능식품존을 마련했다. 8월 리뉴얼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식품관에는 업계 최초로 맞춤형 큐레이션 방식을 적용한 건강 전문관이 들어섰다. 피부·다이어트, 수면·스트레스 등 소비자 관심사별로 제품을 진열했다. 롯데백화점도 노원점과 평촌점의 건기식 매장을 새단장하며 관련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다.

내수 정체에 수출로 활로 모색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팬데믹 기간 높아진 국내 건기식 시장은 급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일상 회복 이후 내수 소비가 둔화되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건기식 내수용 판매액은 2020년 3조990억원에서 2022년 3조8914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년 연속 감소세다.

시장 성숙과 함께 경쟁도 치열해졌다. 기존 건기식 기업들이 수요 증가에 맞춰 설비를 확충하고 뷰티·식품 등 인접 산업의 신규 진입까지 더해졌다. 건기식 제조업체 수는 2020년 521곳에서 지난해 607곳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활로는 수출에서 찾고 있다. 건기식 수출은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지난해 수출 판매액은 3802억원으로 2020년 대비 67.9%, 전년 대비 17.3% 늘었다. K뷰티·K푸드가 국내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자 해외로 나가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운 만큼 K건기식이 이 기세를 이어갈지 관심이 모인다.

K뷰티 성장을 이끌었던 코스맥스그룹과 콜마그룹은 건기식 시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코스맥스바이오는 지난 8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글로벌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중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최근 상하이 공장은 인도네시아 할랄제품보증청 인증을 획득했다. 이를 계기로 동남아시아 및 중동 시장을 본격 공략할 계획이다. 콜마비앤에이치도 지난해 건기식 부문 해외 매출이 40% 늘며 성장 중이다. 콜마비앤에이치 관계자는 “K건기식에 대해 중국·동남아 시장에서는 비싸도 믿을 만하다는 인식, 북미·유럽 쪽에서는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괜찮은 제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시장을 다변화하며 수출 확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건강기능식품법 시행 20주년을 맞아 건기식협회는 산업의 미래 비전 중 하나로 ‘글로벌 시장으로의 도약’을 제시했다. 정명수 건기식협회 회장은 “현재 해외 시장에서 국내 수출액 비중은 0.14%지만 2035년엔 1.5%까지 증가해 5조원을 달성할 것”이라며 “국내 시장 규모도 2035년엔 15조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