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닮아가는 한국… 국내 투자 줄고 해외로 돈 빠져나간다

입력 2025-11-05 00:27

한국의 자본 유출 양상이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둔화로 국내 투자는 줄고 해외로의 자본 유출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해외로의 자본 유출이 심화할 수 있어 경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일 이 같은 내용의 ‘해외투자 증가의 거시경제적 배경과 함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민소득 대비 순해외투자 비중은 2000~2008년 0.7%에서 2015~2024년 4.1%로 약 6배 증가했다. 순해외투자(자본순유출)는 내국인 해외투자와 외국인 국내투자 간의 격차를 의미한다.

KDI는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인 ‘자본 수익성’이 하락하는 점이 순해외투자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자본 수익성은 제도개선, 혁신 등의 영향을 받는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비례해서 좋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투자 수익률이 해외투자 수익률보다 낮아졌다. 기업이나 가계 입장에서는 국내에 투자할 유인이 줄고, 대신 해외투자로 눈을 돌릴 유인이 커졌다는 것이다.


KDI는 생산성이 0.1% 하락한 경우 거시경제 영향을 분석한 결과 국내 자본이 0.15%(지난해 기준으로는 국내총생산(GDP)의 0.7%, 약 18조원) 감소하고 순대외자산은 같은 규모로 증가한다고 밝혔다. 기업이 생산성 하락에 국내투자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GDP는 생산성 둔화 영향(0.1% 포인트)에 국내 자본 감소 영향(0.05% 포인트)이 더해지며 총 0.15% 감소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즉 생산성 하락(0.1%)의 1.5배만큼 GDP가 줄어드는 것이다.

KDI는 특히 노동소득 의존도가 높은 근로자일수록 이 같은 상황에서 받는 악영향이 더 클 것으로 우려했다. 정규철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자본소득은 국내에서 감소해도 해외에서 상쇄되기에 전체로는 줄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보다 먼저 급속도의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과 유사하다.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자본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해외 투자가 늘며 해외 투자 수익률이 국내 투자 수익률을 역전했다. 2010년대에는 일본의 순수출이 ‘마이너스’로 전환됐지만 오히려 6%의 해외 투자 수익으로 경상수지가 흑자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경제활력 저하로 국민소득 중 해외 투자 수익 의존도가 더 커진 것이다.

정 부장은 “경상수지 흑자는 국민의 소득 감소를 완화해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제약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다만 그 기저에 생산성 둔화가 있다는 점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 제고를 위해 경제 구조개혁을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부장은 “유망한 혁신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한계기업은 퇴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구축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김윤 기자 k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