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영장 청구에 반발… 3년 만에 재연된 시정연설 보이콧

입력 2025-11-04 18:32
202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4일 국회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계단에서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야당 탄압 규탄대회’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지훈 기자

국민의힘이 4일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해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더불어민주당이 3년 전 이재명 당시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에 반발해 사상 첫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던 부끄러운 전례가 되풀이된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시정연설 전 의원총회에서 “이제는 전쟁이다.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이번이 이 대통령의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고 선전포고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이 국회로 들어서는 시점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쓴 채 규탄대회를 벌였다. 당초 침묵시위를 기획했지만 이 대통령이 등장하자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선 “범죄자 왔다” “꺼져라” 등의 막말이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은 시위 중이던 장 대표를 향해 미소 띤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장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했다. 본회의장 연단에 선 이 대통령은 텅 빈 야당석을 바라보며 “좀 허전하군요”라고 말했다.

제1야당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시정연설’이 이뤄진 건 이번이 두 번째다. 2022년 10월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하며 본회의장 바깥에서 검은 마스크를 쓴 채 규탄대회를 열었었다. 여야 공수만 바뀐 채 똑같은 장면이 재연됐다. 당시 민주당의 불참 이유도 당대표였던 이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중앙당사 압수수색이었다.

장 대표는 오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당 ‘부산·울산·경남 지역 민생 예산정책협의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정부가 국민의힘을 언제 협상의 파트너로, 협력할 대상으로 인정했느냐”며 “전날 영장을 청구했는데 우리가 웃는 낯으로 시정연설을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 일동은 “구속영장 청구는 국민의힘을 내란정당으로 엮겠다는 목표를 미리 정해두고 시작한 ‘답정너식 수사’의 결과”라는 성명도 냈다. 추 전 원내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킬 것이고, 특권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사전 환담에도 불참했다. 이 대통령은 5부 요인으로서 자리에 참석한 조희대 대법원장과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를 거론하며 “우리 대법원장님을 포함해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등 기관장 여러분께서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셔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짧게 “예, 예”라고 답했다.

이형민 이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