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 주로 적용되는 전자식 도어의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사고 발생 시 차 문이 열리지 않아 차 안에 갇혀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미국과 중국 등에선 전자식 도어 손잡이를 퇴출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4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불이 난 테슬라 모델S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제프리·미셸 바우어 부부의 유족이 최근 테슬라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해 11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발생한 사고로 바우어 부부를 포함해 당시 차 안에 있던 5명 전원이 사망했다. 테슬라 차량의 문은 저전압 배터리로 작동하는데 충돌에 따른 배터리 손상으로 문이 열리지 않은 게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라고 유족은 주장한다. 같은 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화재가 발생한 테슬라 사이버트럭의 문이 열리지 않아 대학생 2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밖에서 차 문을 열 때 사용하는 전자식 도어 손잡이는 평소엔 차체 안에 파묻혀 있다가 승객이 타고 내릴 때만 돌출한다. 그래서 ‘히든 타입 도어 손잡이’(숨겨진 손잡이)라고도 불린다. 주행 중 공기저항을 줄여 전기차의 최대 주행거리를 5㎞ 이상 늘릴 수 있다. 디자인 면에서도 완성도가 높아 요즘은 자동차업체 대부분이 전기차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차에도 적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전력 공급이 끊기면 외부에서 문을 열지 못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돌출하거나 잠금이 해제되도록 설계됐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전기차업체 관계자는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달리 첨단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위해 자동차가 갖춰야 할 기본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며 “자동차는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일부 국가에선 전자식 도어 손잡이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전 세계에서 전기차 시장이 가장 큰 중국이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MIIT)는 지난 9월 ‘자동차 도어 손잡이 규정’ 초안을 발표했다. 트렁크(테일게이트)를 제외한 모든 도어에 외부 손잡이를 부착해야 하고 화재 발생 시 외부에서 도구 없이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르면 내년부터 중국산 신차에 전자식 도어 손잡이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MIIT는 “자동차 도어 손잡이의 안전 성능을 높여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같은 달 2021년식 테슬라 모델Y의 전자식 도어 손잡이 결함에 대한 예비평가 조사에 착수했다. 주행 후 부모가 뒷좌석에 있는 아이를 내리려는데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거나, 일부 차주는 창문을 깨야 했다는 신고가 여러 건 접수돼서다. 사고 발생 시 구조대가 차 문을 열고 탑승자를 구출해야 하는데 손잡이가 돌출되지 않아 지연된 사례도 있었다.
한국에선 아직 전자식 도어 손잡이 규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전기차 손잡이 미작동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규제를 검토해 볼 필요성은 있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