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철강 구조조정 시동… 철근 줄이고 특수강 생산 늘린다

입력 2025-11-05 00:14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미국발 관세 충격과 글로벌 수요 부진 등으로 시름하는 국내 철강업계에 총 57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추진한다. 또 공급 과잉이 심한 철근 품목은 생산 감축을 유도하고, 특수탄소강과 수소환원제철 등 미래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알맹이 빠진 대책”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산업통상부는 4일 이런 내용이 담긴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먼저 지난 한·미 관세협상에서 제외돼 고율 관세 타격이 불가피한 철강 부문의 통상 대응책을 마련했다. 4000억원 규모의 ‘수출공급망 강화 보증’을 신설해 모두 5700억원의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국가 간 협상 채널을 넓혀 통상 리스크 대응을 강화한다. 관세청 등 관계기관 공조 강화를 통해 불공정 수입재 유입도 차단한다.

과잉생산된 철근의 생산량 감축도 유도하기로 했다. 철근의 경우 수입품 비중이 낮아 국내 생산을 일부만 줄여도 공급 조정과 가격 안정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했다.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 철근 설비를 줄이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특수강 등은 신성장 원천기술로 지정해 지원을 확대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10개 특수탄소강 분야에 2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해 전체 철강 제품에서 특수탄소강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12%에서 20% 이상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설비조정과 탈탄소 전환으로 지역경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산업위기지역 지정과 연계한 지원책도 병행한다.

철강업계에선 정부 지원책이 나온 것에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철강업계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해소하기 위해 나선 점은 긍정적”이라며 “앞으로의 추가 대책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의 핵심 요구가 반영되지 못한 것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이번 방안에는 철강업계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요구해 온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내용이 제외됐다. 업계는 2022년 1분기 킬로와트시(kWh)당 105.5원에서 지난해 4분기 185.5원으로 80원(75.8%)이 인상되는 등 전기료 부담이 막중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미국의 철강 고율 관세 부과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친 것도 업계 우려를 낳았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율 관세로 수출 타격이 심화하는 상황인데, 협상 시기와 방안, 추진 방향 등 세부 사항이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선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 기술전환 특별법’(일병 K-스틸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정치권과 노동계의 공동 기자회견도 열렸다. 김성호 포스코 노조위원장은 “포항·광양의 중소 철강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며 “정부가 오픈마켓 논리에서 벗어나 철강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명시해야 한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했다.

허경구 기자, 세종=김혜지 기자 nine@kmib.co.kr